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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뒤탈 자초하는 정부의 장밋빛 예산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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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동호
경제부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 공약 중 하나인 저소득층 가구의 조제 분유 및 기저귀 지원예산 162억여원이 전액 삭감됐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이 내년 예산안의 문제점이라면서 6일 기자의 e메일로 보내온 내용의 일부다. e메일에는 “남북 간 협의도 시작하지 않은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사업예산 402억원이 예산안에 포함됐다”며 “이는 박근혜정부에서 서민·복지는 우선순위에서 최하위로 밀려나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부 예산안이 이런 공격을 받는 것은 올 연말까지 계속될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두고 예고편에 불과하다. 정부 기대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잇따라 제시되면서 예산안에 포함된 사업도 줄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예산 당국에 대한 각 정부부처 및 국회의원의 공격은 격렬해질 공산이 크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357조7000억원으로 짠 것은 내년 경제가 3.9% 성장할 것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이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5%로 낮췄고, 8일로 예정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정 전망치도 3.9%에서 3.7%로 낮춰질 것으로 경제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예산 집행 동결)’ 파장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

 정부의 장밋빛 성장률 전망은 이미 여러 차례 뒤탈을 일으켰다. 올해 예산안은 당초 4% 성장률을 근거로 짰다가 2.7%로 낮춰지면서 세입 규모를 12조원이나 줄이는 감액 추가경정예산의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최대 10조원의 세입이 추가로 펑크 나게 생겼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내년 성장률을 다시 후하게 전망했다. 이를 토대로 국회에 218조5000억원의 세입예산안을 제출했는데 이는 올해 200조원에 그칠 수도 있는 세입 실적보다 9%나 늘어난 규모다.

 이렇게 부풀려진 세입 전망을 토대로 각 부처는 예산 확보 로비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 의원으로부터 예산안 배정의 타당성 공격을 받는 빌미를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떠넘겨진다. 감당할 능력도 없이 세출을 확대하면서 이미 올해 국가 채무 가운데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적자성 국가 채무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기재부는 이같이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대통령 공약 이행에 사로잡혀 스스로 뒤탈을 키우고 있다.

 이제는 세입 여건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재정 악화를 막으면서 공약 수정에 대한 국민 설득도 가능할 것이다.

김동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