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하는 교회는 이제 그만 … 진짜 사랑 나누고 싶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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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길찾는 교회를 이끄는 성공회 민김종훈 신부는 “어떤 신앙 고민이든 털어놓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부모의 성(姓)을 모두 따 ‘민김’으로 성을 삼았다. [안성식 기자]

매주 일요일 오후 서울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의 서울주교좌성당 지하공간에서는 특별한 예배가 열린다. 주로 ‘가나안 신자’들로 이뤄진 신생교회인 ‘길찾는 교회’가 어린이 예배실을 빌려 진행하는 일요예배다.

 가나안 신자는 한국 개신교의 각종 모순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교회 내 권위주의, 세습, 자기 교리 외에는 철저히 배격하는 완고함 등…. 이런 것들에 염증을 느껴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아 떠돌거나 아예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광야를 헤맸던 이스라엘 백성에 빗대 붙인 이름이다. 현실 속에서 마땅한 교회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자기들끼리 뭉친 게 길찾는 교회다.

 교회는 성공회 민김종훈(자캐오·39) 신부가 이끌고 있다. 지난달 22일 예배시간에 맞춰 성당을 찾았다. 민김 신부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교회를 시작한 게 지난 3월”이라고 소개했다. 매주 교회에 나오는 고정 신자는 8∼9명, 매번 얼굴이 바뀌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평균 15명 정도 모인다.

 민김 신부는 “우리 교회의 가나안 신자 중에는 개신교 목사의 딸, 현역 전도사도 있다”고 했다. 다니던 교회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어 오전엔 기존 예배에 참석하지만 오후엔 “진짜 예배 드리러 왔다”며 이곳에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소수자도 있다”고 밝혔다. 현재 동성애에 대한 성공회의 공식 입장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으로부터의 분리 등 역사적으로 피를 부른 교리 충돌을 여러 차례 경험한 후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게 성공회의 전통이다. 민김 신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조심스럽게 동성애자를 끌어안은 것이다. “새로운 영적인 만남의 기회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길찾는 교회는 예배도 독특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예배 시간 중 신부의 강론이 없었다. 대신 ‘말씀 나눔’이라는 순서가 있다. 참석자가 돌아가며 신앙과 관련된 고민, 그날 읽은 성경말씀에서 느낀 점 등을 털어 놓는 시간이다. 신부는 신자들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분위기를 부드럽게 몰고 갔다. 일종의 사회자 역할이다. 성직자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그의 발언이 또 하나의 권위가 돼 신자를 내리 누르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아예 강론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민김 신부는 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젊은 또래사목’ 담당이다. 갈수록 교회에서 멀어지는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게 그의 임무이긴 하다. 하지만 그가 그려 보이는 신앙의 청사진은 평범하지 않다. 그는 왜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일까.

 그는 “나 스스로 신앙의 방황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장로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한창 젊은 혈기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자들이 주로 교회 장로가 되는 모순이 크게만 보였다. 개인의 신앙체험을 중시하는 오순절 교단으로 옮겨 목사가 되려 했지만 이 역시 중도 포기했다. 이번에는 목사가 교회 안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로 군림하는 현실이 거슬렸다. 그때 만난 게 성공회다.

 민김 신부는 “교회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교회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원래 자리를 되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또 “뭔가 어마어마한 걸 하려는 게 아니라 화석화돼 있는 요즘 교회 문화에 반대하는 하나의 균열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길찾는 교회 신자들은 그런 신부의 생각에 공감한 사람들이다. 개신교 목사의 딸인 A(31)씨는 “가령 기성 교회는 술이나 담배 문제에 지나치게 엄격하다. 신앙에서 비본질적인 부분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회에 필요한 사랑이 없다. 길찾는 교회에도 갈등은 있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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