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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국군 전담 앞둔 휴전선을 가다|중·동부 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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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부 전선에서 동부 전선으로 갈수록 미군 철수에 무감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일성 고지를 거쳐 오성산·저격의 능선·건봉산·향로봉으로 뻗어 내린 준봉엔 이며 우리의 방위의지가 4반세기 동안 서려 있던 땅-. 미군이 들어오건 물러서건 아랑곳없이 동부 전선은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자주 국방을 위한 안간힘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경제적 군대 운영의 새 과제를 안겨 다 줬다. 전방 초소의 난방 시설도 이젠 국산 「오일·버너」로 바뀌었다. 방한복·방한모와 털장갑·안면 마스크·설상화 등 피복류도 국산품에 의존 해야했다.
먹는 것도 지금은 보급 경제에 따라 깡그리 부대에서 마련한다. 6851 부대 (부대장 오일수 장군)의 경우 하루 4천kg을 생산하는 콩나물 공장, 1만3천개의 빵을 구워내는 제빵 공장, 그리고 두부 공장, 종합 양돈장, 김치 탱크 등이 부대 안에 갖추어져 있다.
내무반도 많이 달라졌다. 비닐 장판이 깔린 내무반엔 온수를 쓸 수 있는 파이프가 통하고 실내 온도 섭씨 18도에서 22도라는 팻말이 내무반마다 걸려 있었다. 연대장 K대령은 『저 진달래를 보시오. 영하 24도에도 꽃이 필 수 있는 기적이 이 내무반에서 이뤄지고 있읍니다』라고 「내무반에 꽃피우기 운동」을 설명했다.
내무반마다 따뜻한 실내 온도를 지켜 진달래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이 부대의 중대장 K대위는 『장교들의 하숙집이 사병들의 내부반만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병들에겐 고된 일과가 기다린다. 산봉우리에 메아리 치는 태권도 구호 소리, 산악 숙달 훈련,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구보 강행군, 「게릴라」체조-. 야간 매복 경계를 마치면 잠시 눈을 붙이다 깨어 그 같은 교육 훈련을 받아야 한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담력 훈련 땐 외줄 로프에 롤러를 굴려 30∼40m 낭떠러지에 뛰어 내린다. 『자신 있는가?』『네』『죽어도 좋은가』『네』-. 수평 하강 직전에 조교 하사관과 신병 사이엔 이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군단장 이병형 장군은 『말만의 국방과 실천하는 국방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3성 장군이 공수 훈련장에 나타나 점프대에 올랐을 때 사병들도 놀랐고 교관도 놀랐다고 했다. 『34 피트 낭떠러지에 뛰어 내리기 위해 타워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더군요. 다리가 후들후들 하기까지 해요』 3성 장군이 뛰어내리자 고급 장교 참모들이 망설일수 없었다. 군단을 방문한 서울의 학생 대표들에게 이 점프를 시켰다. 모두 뛰어 내렸는데 학생 3명이 주저하더라는 것-.
한참 망설이다 3명마저 눈을 딱 감고 뛰어내리자 군 단장은 식은땀을 씻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것이 말만의 국방과 실천하는 국방의 차이점이요』라고 어깨를 툭툭 쳤다.
중부전선 ○○고지 전방 초소 분대장 송병식 하사 (26) 는 『휴전선 국군 전담』소식에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의타심을 버리고 죽거나 살거나 이 땅을 내가 지킨다는 결의에서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최근 북괴는 심리전에서 위축됐음이 분명하다』고 중대장 이관호 대위 (27)는 말했다.
『백설이 깔리자 적은 까만 위장복을 입고 작업을 해요. 월남 귀순하는 자를 즉각 처치 할 수 있도록 쉽게 식별하기 위해 서지요.
북괴 작업병들이 쉴 때는 모조리 북쪽을 쳐다보고 앉는 답니다. 괴뢰군들은 최근에 저들의 허위 선전 스피커를 돌려놨습니다. 북괴 쪽을 향해서. 왜냐하면 우리의 심리전 방송이 먹혀들어 가니까 겁이 나서 방해 방송을 하는 거지요.』
21년만에 국군이 전담하여 지키게 되는 1백55마일 휴전선은 요새화의 길을 걸어왔다. 영구 진지와 포대가 산마다 뚫려 진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사계 청소로 낮은 평야는 허허벌판이 되어 노루·꿩의 낙원이 됐다. 지뢰 지대와 동굴 지대. 서부 활극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바윗돌로 된 대기갑 장애물과 용치 라는 이름의 방벽-. 적이 철책선을 뚫었다해도 도저히 남쪽으로 내칠 수 없는 갖가지 장애물이 덫처럼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적은 땅굴을 파고 철책선 밑을 돌파한 일이 있어 동굴 내무반까지 만들어 올빼미 경계를 펴고 있다.
엄격한 군율 때문에 「한신 대학」이란 닉네임이 붙은 야전 사령부의 한신 사령관은 야간 산악 훈련 때 절벽을 오르지 않고 『훈련을 마쳤다』는 거짓 보고가 없도록 「서칠라이트」를 산등성이에 비치면서 독전 (?) 하는 등 야전군의 훈련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가끔 일어나는 총기 사고 등 민심을 소란케 하는 안전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이탈 병 방지에 부심 하면서 야전 놀이 (중대별로 하모니카와 기타로 악대 편성)와 진중 쾌지나 (사병들의 야전 춤)로 진중 생활의 명랑화에 노력하고 있었다. 장병간의 인화를 찾는 중대가정 운동이 승전 운동과 함께 전방에 활발히 번지고 있었다.
【최규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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