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의 물증…15세 범인|김 후보 집 폭발물 사건 단락에 의문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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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집 폭발물 사건은 10일 밤 김 후보의 조카 홍준 군 (15)이 범인으로 단정되어 구속됨으로써 제1단계의 수사는 일단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발생 당초 정치 테러냐, 테러를 가장한 조작이냐는 등 거센 정치적 파문을 일으킨 것과 함께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냈고, 구속된 김 군의 범행이라는 물증 제시가 없어 아직도 배후 수사 등의 여운을 안은 채 물증 수집 등 공소 유지를 위한 어려운 고비를 남기고 있다.
특히 홍준 군을 범인으로 단정한 경찰과 검찰이 내세운 것은 본인의 자백과 식모 조행덕 양의 증언뿐, 물적 뒷받침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의 물증은 ①딱총용 화약 ②도화선 ③녹색 테이프 등 세가지로 수사진은 홍준 군을 구속 수감한 11일까지 그중 어느 한가지도 분명히 출처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9일 하오, 5시간30분 동안이나 김 군의 집을 샅샅이 뒤졌으나 남빛 비닐·테이프와 장난감 딱총만 찾아냈을 뿐 문제의 녹색 테이프는 찾질 못했다.
경찰은 범행 경위 발표에서 사건 전날 김 후보 접견실에서 폭발물을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사건 이튿날 아침 뒷마당에서 빨간 종이를 봤다』는 식모 조양의 진술로 폭발물 제조 경위에 대한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조양이 본 것은 어디까지나 빨간 종이 부스러기에 불과하며 그것이 딱총 화약 껍질이었다는 명백한 증언을 얻지 못하고 있고 또 홍준 군이 폭발물을 만들었다는 접견실에 대한 수색을 미루고 있어 홍준 군의 범행은 우선 폭발물 제조 경위부터가 불분명하다.
다음의 문제점은 바로 도화선 출처. 현장에서 발견된 도화선은 공업용 도화선으로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 추정)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홍준 군으로부터 지난 9일 아침 자백을 받아놓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기까지 만 2일 동안 이 도화선의 출처에 대한 자백을 얻지 못한 것은 중요한 의문점으로 남는다.
홍준 군의 범행으로 심증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뒷받침이 된 식모 조양의 진술에도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식모 조양은 경찰에서 홍준 군이 사건 1∼2분전에 소파의 제자리를 비웠다고 말했으나 밖으로 나갔다 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또 식모 조 양은 10일 상오까지만도 『사고 직후 집에서 빨간 화약 종이 같은 것을 보았다』고 말해오다 10일 하오 8시쯤부터는 『사건 발생 이튿날인 1월28일 분명히 화약을 봤다』고 어긋난 말을 하고 있어 조 양의 증언이 과연 진실한 것 인지의 여부조차 의아심을 갖게 하고 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 의하면 파괴력이 없는 연화 뭉치일 때는 도화선의 훼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 도화선의 길이는 최대한으로 잡아 30㎝를 넘지 않고 따라서 점화에서 폭발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40초 이내. 홍준 군이 폭음 40초 전에 밖에 나갔다는 명백한 시간 계산이 아직 미지수로 남았다.
특히 도갑상씨가 들어와서 사건이 나기까지는 이수동씨와 경찰과의 화투놀이 시간 측정에 의해 50초 내지 1분5초. 도갑상씨는 경호실에 들어가면서 분명히 응접실 창 너머로 홍준 군을 봤다고 말하고 있어 응접실을 나가 접견실에서 폭발물을 꺼내 부엌으로 가 점화, 현관 앞에 던지고 ,다시 응접실로 돌아오기엔 1분5초. 극히 빠듯한 시간이기 때문에 명백한 물증이 없는 한 분초를 다투는 범행 경위 설명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홍준 군을 구속한 후 『현 단계에선 배후 관계 수사 때문에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고 밝힌 수사진이 끝내 물증을 제시 못 할 경우 자백만으로 공소 유지가 어렵고 기소된 후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당초의 자백마저 그 임의성이 있을는지의 여부조차 문제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한편 이번 수사에서 뚜렷이 드러난 대량 소환과 영장 없는 가택 수색 등 강제 수사 방법 등이 문제점으로 남게됐다.
경찰은 그동안 참고인이라는 핑계로 사건 현장과 직결될 수 없는 50여명의 김 후보 측근을 마구 연행했다. 이들에 대한 심문은 한결 같이 사건 전후의 행적은 간단히 묻고 김 후보의 조직 관계 등을 중점적으로 추궁하는 등 엉뚱한 심문으로 다른 차원의 수사가 병행된 인상을 짙게 풍겼다.
특히 도갑상씨와 방범원 조기환씨는 사건 직전에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1백44시간동안 연금 되어 범행을 추궁 당했고 끝내 혐의가 나타나지 않은 운전사 도씨는 향토 예비군 설치 법 위반 혐의로 즉결에 넘겨지고 말았다.
또 홍준 군의 가택 수색은 어머니 민병숙씨 (41)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는데 10여명의 형사들이 몰려 압수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마구 집안을 뒤졌다. 심지어 민씨가 가족들에게 연락을 못하게 1명이 전화를 끌어안는 행패를 부리는 등 난폭한 행위가 있었다. <김형구 기자>

<수사 일지>
▲1월27일=사건 발생 (밤 9시37분) 신고 (밤 9시42분) 마포 경찰서 동교 파출소에 수사 본부 설치. (본부장 서울시경 형사과장 고인준 총경)
▲27일∼29일=운전사 도갑상, 총무비서 방대엽, 경호부 책임자 이수동, 경호원 박문옥 등 연행, 발생 상황 집중 탐문.
▲28일=박경원 내무 1백만원 현상. 신민당서 국회 전상 조사단 구성 제의.
▲29일=김 후보 측근 인사 집중 수사 시작.
▲30일=영등포구 사당동서 모의 폭음탄 실험. 『사건 윤곽 파악』 첫 발표.
▲2월1일=김 후보집 에 첫 협박 편지.
▲2일=국회 조사단 활동 개시 현장 검증.
▲3일=김 후보 측근 집중 재수사 시작. 김 후보 집에 첫 괴 전화.
▲4일=목격자 김봉기 출현 발표. 도갑상·방범 대원 조기환 연행, 연금 시작. 『협력자 있다』 발표.
▲5일=김 후보 조카 홍준 군 첫 연행. 『범인은 측근 2명』 발표. (정일형 선거 대책 본부장 집에 화재)
▲6일=홍준 군 친구 박재성 군 연행. 경호부 책임자 이수동씨 구속. (김포·강화 사건 관련)
▲8일=홍준 군·식모 조행덕 양·여비서 김희순 양 연행 철야 심문. 『목격자 무의미』발표.
▲9일=홍준 군 가택 수색. 『사건 전모 2, 3일 내 밝히겠다』발표
▲10일=『홍준 군 자백』 발표. 하오 5시 구속 영장 청구·밤 10시45분 영장 발부.
▲11일=새벽 1시15분 마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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