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 연구소 발족 5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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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최초의 「딩크·탱크」 (두뇌 집단)로서 발족한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 (KIST)가 10일 그 창립 5주년을 맞았다.
동 연구소는 처음부터 산업계의 절실한 요구에 의해 탄생 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호적한 연구 풍토 속에서 우리 과학 기술자들의 의욕만으로 탄생한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이 연구소는 개발 도상국의 산업 경제는 과학 기술에 바탕을 두어야만 진정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미 양국 대통령의 합의에 의해 하나의 「모델·케이스」로서 발족을 보게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이 연구소엔 내외자 약 2천5백만불 (약 75억원)이 투입되어 일찌기 우리 나라에선 볼 수 없던 현대식 연구 시설을 갖추었으며 그 중에도 특기할만한 사항은 이 연구소가 발족함으로써 처음으로 유출 두뇌 27명이 해외에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국내 각처에서 참가한 유능한 연구자와 함께 우리 나라 초유의 두뇌 집단 (총 인원 5백78명)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 연구소가 처음 발족했을 당시 국내식자층 가운데서는 외국에서 모양 독립 채산제를 택한 두뇌 회사로서의 민간 연구 기관이 과연 우리 나라에서도 존립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회의는 그 동안의 운영 실적을 통해서 볼 때 미구에 완전 해소될 것으로 보이며, 이 점에서 만도 동 연구소의 업적은 괄목할만한 것이 있다 할 것이다. 발족 후 5년의 역사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이 연구소의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한 것은 69년10월께부터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소가 이처럼 짧은 1년 반이라는 기간 안에 근 3백 건에 달하는 연구 테마를 소화했고, 45건의 특허를 출원, 그중 20여건이 등록됐거나 공고 중에 있다는 사실이라든지 또는 포항 종합제철 건설 계획 등에 관계해서 큰 성과를 낸 것 등은 이 연구소의 성가를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가 거둔 이상과 같은 성과는 물론 고무적인 것이요. 그 앞으로의 발전에 더욱 큰 기대를 걸게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면 그 전도에는 여러 장애가 있다는 것을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첫째로, 연구소원들의 처우를 계속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가면서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이 꾸준히 계속되도록 보장하는 항구적인 운영 기반을 확립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 과학 기술 행정 당국자가 보이고 있는 바와 같은 관료주의적인 작태가 이 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의 선정이나 그 실시 과정에 작용한다면 동 연구소의 참다운 업적 산출에도 결정적인 저해 요인이 될 것임을 우리는 크게 우려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앞으로 이 연구소는 국내의 기타 연구 기관 또는 학술 단체와의 보다 긴밀한 협조 관계를 스스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엘리트를 자처하는 나머지 타 기관과의 이와 같은 밀접한 유대 관계를 스스로 거부하거나 또는 지나친 자신을 갖는 나머지 국내 타 기관이 갖고 있는 자료조차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고 연구에 착수한다면 그 자체가 한국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에 만능과 만전을 기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나라엔 아직 실패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소지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느 시기까지는 내부에선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고, 외부에 대해선 절대에 가까운 신용을 얻도록 분발해 주기를 당부할 뿐이다. 미국 텔 연구소도 5천명 소원이 50년 먹고 살 수 있는 특허료를 벌어다준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까지는 수 없는 실패를 거듭했었다.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의 진정한 비약은 동 연구소 소원들의 자체 노력과 분발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부·산업계·학계·민간이 모두 전기한바 실패의 과학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모처럼 큰 업적을 나다내기 시작한 이 연구소에 대한 물심양면의 협조를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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