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연 다섯돌|그 성과와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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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나라 최대의 「딩크·탱크」(두뇌 집단)인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가 10일로 만 5주년을 맞는다. 65년 5월 박정희 「존슨」 양 대통령의 공동 성명에서 싹이 튼 동 연구소엔 그 동안 내외자 약 2천5백만불 (약 75억원)이 투입됐고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두뇌들을 유치해서 일하게 하는 등으로 동양에서 유수한 연구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발족 5주년이라고는 하지만 정식으로 연구 활동이 시작된 것은 건물 준공식이 있었던 69년10월부터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연구 성과가 나온 것은 자타가 인정하지만 연구소의 1세대는 10년이라는 설로 보아 5주년이 하나의 고비가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는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같은데서는 동양 제1의 「딩크·탱크」이며 「딩크·탱크」운영 면에선 일본보다 30년 앞섰다고까지 평가한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과학 기술과 산업 경제의 전문가로서 내한하여 동 연구소를 보지 않고 가는 외국인은 거의 없으며 동 연구소를 보고 나서 개발 도상국인 한국에 그런 연구소가 있다는데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하지 않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선 홍능 임업 시험장 구역 내에서도 노란자위 같은 약 10만평 대지 위에 대소 12동의 건물 (건평 약1만2천평)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론 우리 나라 최초의 두뇌 유입 성공 케이스인 27명의 재외 한국 과학자를 비롯한 도합 37명의 책임 연구원과 연구원을 중심으로 5백73명의 소원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동 연구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6개 연구부에 나눠져 소속되는 34개 연구실로서 발족이래 70년 말까지 2백87건의 연구 테마를 종결시켰고 45건의 특허를 출원, 그중 15건이 등록됐고 7개는 공고중이다. 동 연구소에 현재 32명의 박사가 소속돼 있으니까 연구소로서는 제일 많은 박사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발족이래 정부 및 산업계에서 약 7억원의 연구 위탁비와 출연금을 받은 것도 우리 나라에선 처음 보는 일이였는데 71년엔 1년간에 7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동 연구소가 우리 나라 연구소 중에선 최고의 대우를 소원에게 보장하고 있고 동 연구소 육성법에 의해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감사를 못할 만큼 독립과 자유가 보장돼 있어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나 조건이 딴 연구 기관에 비교도 못할 정도로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 대신 좋은 연구 성과를 내봐야 보통, 못 내면 욕을 먹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동 연구소의 어떤 간부는 포항 종합 제철 계획에 간여해서 약 3천만 달러를 절약케 했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를 만든 밑천은 빠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으로 본다면 그밖에도 기계 공업 육성 방안 작성 등 여러 용역에 관계함으로써 많은 업적을 냈으니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큰 성과를 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밖에도 동 연구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유리한 자료가 많이 있다. 71년 들어 대기업체 몇군데서 각각 3천만원짜리 연구 계약을 맺자고 제의해온 것 같은 것은 우리 나라 산업계에서 비로소 동 연구소의 유용성을 인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점이 낙관적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21억원의 기금이 있어 그 이자로 운영 관리비에 쓰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규모로는 약 15억원의 연구 계약비와 출연금이 있어야 적자 운영을 면하게 된다.
금년에 무난히 7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 가지고는 아직도 반도 안되는 숫자다.
동 연구소의 대우가 최고라 하지만 그것은 초창기 때의 수준에서의 이야기고 연구계도 대우에 불만인 사람이 꽤 있지만 행정계에 이르러서는 대우가 좋은게 하나도 없는 실정이라고 투덜대고 있어 사기가 전보다 못하다. 이점도 심각히 고려해야할 문제로 돼 있다.
특허 출원, 45건은 이제까지 국내 어떤 연구소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의 연구소는 고사하고 일본의 송하 전기 산업 (내셔널)의 11개 연구소에서 2만 건의 등록을 보유하고 있고 매년 약 4천건 (의장, 상표를 포함해서지만)이 출원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 정도 갖고는 조금도 자랑거리가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출원 45건 중 7건의 최후 거절이 특허국에서 나왔고 두어 건의 이의 신청과 항고 등 사건이 있다는 것은 동 연구소의 특허 작전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반갑지 않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아직도 과학기술처와 같은 기관과의 협조가 어느 쪽 탓이든 간에 충분치 않다는 것도 다시 고려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동 연구소 최형섭 소장도 5주년을 계기로 여러 가지 문젯점을 철저히 검토하겠으며 연구업무 심의 회의 심사에 따라 책임 연구원과 연구원들의 보상, 진급, 연구 계약의 재검토 등을 과감하게 함으로써 활력을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외국에선 연구소가 10년만에 탈바꿈해서 1세대를 넘긴다고 말해지므로 벌써 5년이 된 동 연구소의 비약을 위한 노력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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