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발돋움…「브란트」의 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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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8월의 대소 불가침조약을 스타트로 하여 동서화해의 주역으로 발돋움했던 서독 브란트 수상의「오스트·폴리티크」(동구 정책)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 차례 고비를 맞고 있다.
처음부터 예상돼오던 국내의 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과 동독의 강경 자세, 미국의『미지근한』관망 태도에 덧붙여 갑작스런 소련의 지연정책이 「브란트」수상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의 정세에 몰린 「브란트」수상은 지난달 23일 서독북부의 소도시「프렌스부르크」에서 있은 사민당 집회에서 그의 정부가 국내외에서 계속 고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동구와의 화해정책을 계속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브란트」의 이러한 정책 천명이 있은지 불과 이틀 후에 열린 기민당(CDU)의 전당대회에서는 전 수상인 「키징거」당수가 「브란트」수상의「오스트·폴리티크」는 서독의 이익을 희생하고 일방적 양보만을 거듭하는 『모험주의』라고 공박했다.
지금까지 「브란트」수상은「오스트·폴리티크」에 대해 노골적인 표현으로 반대하지 않던 기민당의 이러한 태도는 기민당과 자매당인 기독교사회연맹(CSU)이 기민당의 태도에 따라 자매당 관계의 지속여부를 결점 짓겠다는 유보적 태도에 자극된 것으로 보인다. 서독 보수세력의 아성인 남부 「바이에론」지방을 발판으로 한「요제프·슈트라우스」CSU 당수가 「브란트」수상의 「오스트·폴리티크」에 철저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브란트」수상의 「오스트·폴리티크」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인 「베를린」 문제 해결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브란트」연립내각은 독소, 독파조약에 대한 연방의회에서 비준조건으로 「베를린」문제의 「만족할만한」타결을 내세웠던 것이다. 서독정부가 내세우는 「베를린」문제해결조건이란 서「베를린」에 대한 자유통행 및 서독행정권이 미치는 영역으로서의 완전한 보장을 미·영·불·소로부터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독정부의 적극적인 동구정책에 발맞추어 지난해 3월, 11년만에 「베를린」문제해결을 위한 4대국대사 회담이 재개된 이래 지난달 19일까지 10개 열렸으나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베를린」 문제가 이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잇다. 첫째가 동독의 주권국가로서의 지위 향상을 위한 서방국가 및 서독으로부터의 국제법적 인정요구와 이에 대한 소련의 동조, 둘째는 연합국 측(특히 미국)의 「브란트」이 동구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들 수 있다.
「브란트」연립정부는 4대국이 「베를린」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해결방안을 타결한 뒤 동독과 세부사항을 협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 측은 원칙적인 문제부터 직접 담판해 나가자고 맞서고 있다.
이는 사실상 서독으로부터 국제법상의 주권국가로서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독정부는 이에 응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소련은 독소조약체결 당시 「베를린」문제해결이 의회비준의 전제조건이라는 서독의 주장을 어느 정도 양해하고 처음에는 동독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인상을 주었으나 최근 동독의 주장을 전적으로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는 지난해 12월 동 「베를린」에서 있은 「바르샤바」동맹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울브리히트」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힌데서 엿볼 수 있다.
소련으로서는 처음 서독과 교섭을 시작할 때 「베를린」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려는 속셈이었던 데다 자체 내 강·온양파 의견분열, 동독의 거센 반발로 멈칫하게 된 것이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동독의 주장처럼 현 상태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베를린」문제타결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설령 「베를린」문제의 타결 점을 찾아 약간 개선되더라도 서방측이 만족할 만한 것은 못 되리라는 점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동독 측에서 양보한다 하더라도 「베를린」의 『숨통』인 자유통행권을 뚜렷한 반대급부 없이 순순히 내 놓지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대로 타결하면 어떤 형태로든 동독의 국제적인 지위만을 향상시킬 뿐이며 소련의 중동, 카리브, 인도양, SALT(전략 핵무기 제한회담)에서의 태도가 불투명한 점을 들어 「베를린」 문제 타결을 서두를 눈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우기 미국정부는 지금까지 「브란트」수상의「오스트·폴리티크」의 성과에 대해 의례적으로 『환영』한다는 표현으로 얼버무렸을 뿐 적극적인 찬반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엉거주춤』한 인상을 주고있다.
미국이 이처럼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브란트」 정책의 결과가 앞으로 구주 질서에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 결론을 내디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브란트」의 정책이 일종의 『모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독일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자체의 중부 유럽에 대한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동구정책을 둘러싼 서독 국론분열로 20여년 동안 안정을 유지해온 정국이 불안해지고, 독소 경제협력체제에 의한 상대적인 소련국력 증강의 우려로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정부는 공산 측의 태도를 가늠하는「데스트·케이스」로 「베를린」문제에 『굳은』자세를 보이고 있다. 「브란트」수상은 이러한 상태에 비추어 연합국 측의 비위를 상하지 않고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공약수』를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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