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한·미동맹의 미래] "북핵위기… 미군철수 말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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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의 권위있는 외교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는 최근 "한.미동맹 관계가 50년 만에 최악의 상태"라고 표현했다.

중앙일보는 김영희(金永熙)대기자의 사회로 로버트 스칼라피노(Robert A Scalapino) UC 버클리대 석좌교수와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에게서 조정기에 접어든 한.미동맹의 미래상과 최근 진행 중인 주한미군 감축 배경과 이해득실을 들어보는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김영희=지난해 10월 초에 시작된 북한 핵문제가 한국 내 반미감정과 만나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논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이 결국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로 귀결될까요.

*** 美 전략 변화로 감축 논의

스칼라피노=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평지돌출(平地突出)식으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했고 그 뒤로도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줄곧 있어 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면 안됩니다. 미국은 1948년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평양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 전례가 있어요. 이는 결국 6.25로 이어졌죠.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김성한=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미국의 세계전략 맥락에서 읽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21세기를 맞아 미 국방부는 '가볍고 빠른'신속배치군 개념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재배치도 그 같은 차원에서 검토되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한국 내 반미감정 고조에 따른 미국의 '감정적'대응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과도한 해석입니다. 주한미군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당장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할 필요도 없습니다.

김영희=일부 논객들은 벌써부터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고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을 대한해협이나 대만해협 쯤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50년 초의 애치슨 선언 악몽을 되살리는 것 같습니다.

스칼라피노=문제는 타이밍이에요. 나는 지금처럼 북핵문제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다루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김성한=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한 바구니에 담겨 있는 두개의 달걀에 비유할 수 있어요. 만일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그것은 주일미군의 기능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 없이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일본인들은 미.일동맹의 의미와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김영희=중국은 한반도의 주한미군 철수를 환영할까요.

스칼라피노=동북아의 평화와 안보질서는 크게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힘의 합의(Concert of Power)'와 힘을 힘으로써 견제하는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두개의 기둥에 의해 유지돼 왔어요. 중국도 이 지역의 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해 이 두 가지 수단에 의존하고 있어요. 지금 중국에 등장한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의 4세대 지도층에 속해요. 이들은 기본적으로 테크노크라트들입니다. 실용주의자들이에요. 물론 가끔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드러내긴 하지만요. 주한미군이 지금과 같은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에서 30년 이상 장기간 주둔하기를 바란다고 베이징이 말하기는 곤란해요.

김성한=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주권국가 내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해 미.일동맹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유일한 버팀목이 될 경우 미.일동맹을 통한 미국의 대 중국 '봉쇄'정책이 노골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주한미군 주둔을 찬성한다고 봐요. 게다가 대만까지 미.일동맹 진영에 가세한다면 중국으로서는 '재앙'이죠. 장기적으로도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통일한국의 핵에 대한 유혹을 견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김영희=지난 50년 간 주한미군은 인계철선(引繼鐵線:Tripwire)개념에 따라 전방에 배치됐습니다. 만일 북한군이 남침해올 경우 전방에 배치된 2사단이 자동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2사단이 한강 이남으로 이동하면 이 인계철선 기능은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성한=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옮긴다면 이는 미국이 그동안 해온 '자발적 인질(Volunteered Hostage)'역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간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야포의 사거리 내에 일부러 들어감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만일 미국이 이 개념을 포기하면 한.미동맹 약화는 물론 온갖 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김영희=북핵 해법과 관련, 미국은 다자간 틀에 의한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반면 북한은 북.미 직접대화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왜 미국은 한사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피합니까.

스칼라피노=문제의 핵심은 다자냐 양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의도예요. 현재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핵게임을 둘러싸고 이것이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한 협상카드냐, 아니면 진짜 핵보유를 위한 전략이냐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에요. 나는 이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북한과 협상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영희=신임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는 데 반대하고 있습니다.

스칼라피노=나는 盧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봐요. 盧대통령은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관점을 한국의 국익에 맞게 재조정할 수 있는 인물이에요. 외람된 얘기지만 盧대통령은 지금 외교를 배우는 중입니다. 미국에 대한 그의 최초의 입장이 바뀔 것으로 봅니다.

김영희=盧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동북아시아 평화협력체'를 국정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협력체 구상에는 미국이 빠져있습니다. 혹시 워싱턴이 이 아이디어에 기분나빠 하지 않을까요.

김성한=우리 사회 일각에 미국은 지정학(地政學)적으로는 동북아시아의 일원이지만 지경학(地經學)적으로는 역외국(域外國)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제1 교역국으로 등장했습니다. 거대한 중국시장은 한국에 기회이자 도전입니다. 떠오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한국이 함몰되지 않고 경제적 기회를 취하면서도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해양세력과 정치경제적 유대의 끈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미국이 동북아의 '자연경제지대(NET)'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스칼라피노=동북아는 러시아의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은 물론 엄청난 시장이 있어요. 문제는 동북아 경제공동체가 기틀을 잡으려면 경제협력 못지않게 안보협력의 틀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이 구상에 관심이 많아요. 모스크바를 반드시 경제공동체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 "盧, 對美시각 바뀔 것"

김영희=정치적 이념을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뉴 리버럴(New Liberal)에 속하는 반면 盧대통령은 소셜 리버럴(Social Liberal)에 속합니다. 두 사람이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고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김성한=부시 대통령은 뉴 리버럴보다는 '온정적 보수주의자(Compassionate Conservative)'로 불리기를 더 바랄 것 같은데요. 저는 盧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만나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길 희망합니다.

스칼라피노=동감입니다. 부시 대통령 초반에는 미.중 관계가 나빴어요. 그러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어요. 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부시와 장쩌민 주석 간에는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됐어요. 盧대통령도 부시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하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인간적 신뢰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한.미동맹 미래를 낙관합니다. 지난 50년간 유지된 한.미동맹은 이제 개선과정을 거쳐 21세기에도 지속, 발전될 것입니다.

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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