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스릴러의 대가 톰 클랜시, 전설이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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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톰 클랜시는 군대나 무기 등에 관심이 많아 군인이 되고 싶었으나 근시 때문에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소설을 발표할 때 민감한 군사정보가 누설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했다”고 말한 바 있다. [로이터]

“이것은 완벽한 스토리다.” 1984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한 작가의 데뷔 소설을 읽고 이렇게 극찬했다. 잠수함이라는 베일에 쌓인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군사 첩보물은 이전에 본적 없던 것이었다.

‘테크노 스릴러(과학기술을 소재로 삼는 추리소설)’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이 작품은 『붉은 10월(The Hunt for Red October)』. 톰 클랜시(1947~2013)라는 걸출한 작가를 탄생시켰다. 1일 (현지시간) 향년 66세의 나이로 작고하기 전까지 총 17권의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에 1억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미국 메릴렌드주 볼티모어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 동화책 대신 해군 역사서와 군사 및 기술 관련 서적을 읽었다. 로욜라 컬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근시 판정을 받아 꿈을 포기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다 37살에 데뷔했다. 이후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의 갑작스런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치밀한 취재, 방대한 군사정보로 명성

 전문가들은 ‘첩보 스릴러물’이 톰 클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평가한다. 이는 『붉은 10월』이 첫 출간될 당시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붉은 10월』은 “너무 기술적”이란 이유로 출판사의 반대에 부딪쳐 출간되지 못할 뻔 했다. 전문적인 군사 정보는 물론이고 실제 군대에서 쓰는 약어까지 반영해 사실성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다수 옮긴 번역가 김홍래씨는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쓴 소설도 대단히 재밌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작가가 만든 주인공 ‘잭 라이언’은 『긴급명령』『패트리어트 게임』등 여러 작품에 등장하면서 미국사회에서 큰 팬덤을 형성했다. 미 CIA(국가정보기관) 정보분석가에서 대통령이 되는 인물로 러시아·중국·중동 지역 등을 상대로 전투를 지휘하며 승리로 이끄는 영웅 캐릭터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주인공을 정보분석가로 설정한 것은 그만큼 현대첩보전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게임으로 진화 ‘대중문화의 아이콘’

 사실적인 묘사는 작가의 치밀한 취재가 바탕이 됐다. 그는 첨단무기의 작동방식과 화력을 알기 위해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직접 군대에서 자문을 받았다. 해박한 군사지식을 담은 그의 소설은 군이나 사관학교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또 미 국방부인 펜타곤에 머물면서 취재를 하기도 했다. 펜타곤을 출입증 없이 드나드는 작가로도 유명했다. 『적과 동지(Debtof Honor)』(1995)라는 작품은 9.11 테러를 예측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는 생전에 작가 지망생들에게 “작가는 갑자기 영감을 받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소설쓰기는 힘든 노동(hard work)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탄탄한 구성과 긴박감 넘치는 전개로 할리우드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등이 영화화 됐으며, 해리슨 포드·밴 애플랙 등이 주연 잭 라이언으로 분했다.

젊은 세대들에겐 게임 제작자로 더 잘 알려져있다. 소설이 원작이 된 게임 ‘레인보우 식스’는 9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고스트 리콘’ 등이 작가의 이름을 달고 출시됐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도 10여권이 번역 출간됐다. 유작이 된 새 소설 『Command Authority』는 오는 12월 미국에서 출간 예정이다. 또 올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그의 원작을 영화화한 ‘잭 라이언: 섀도우 원’ 의 미국 개봉도 예정돼 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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