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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걱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늘 아침에 한동안 소식이 없던 절친한 친구에게서 놀러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반가움에 서둘러 외출 준비를 끝내고 대문을 나서다가 삼년 아래인 남동생과 마주쳤다. 『어, 누나 어딜 가려고 그래, 암만 봐도 좀 수상한데.』『수상할 것 하나도 없어. 친구네 가는 거야. 너야말로 어디 갔다 오냐』『나, 친구형 졸업식엘, 근사하던데.』 그러면서 동생은 저도 졸업 때는 꼭 그렇게 하겠단다. 별로 내용이 없는 말이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골목길을 막 돌아설 때 무슨 「쇼」단의 가장 행렬 같은 일행이 왁자지껄 나타났다.
대부분 교복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어울리지 않게 화환과 꽃다발에 파묻혀 챙을 다 뜯어내 뒤집어쓴 모자만이 걸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한참을 서있었더니 그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나중에 오는 몇몇 학생들은 연탄재와 밀가루를 묻힌 채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소리소리 지르며 지나가 발길을 멈춘 행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물론 그 동안 피교육자 입장에서 오랫동안 억눌렸다는 생활 감정에서 벗어났다는 단순한 마음에 취해진 행동이겠지만 그래도 자기들을 그 만큼 키워준 모교의 떠남을 저 정도로 밖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저들의 내면 세계의 움직임은 과연 어떠한 생각으로 자신들을 현실에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얼른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아까 동생이 한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집 대문을 열자마자 동생을 불렀다.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온 그는 어리둥절한가 보다.『상민아, 너 아까 네가 근사했던 졸업식 얘기 좀 해줄래.』
『난 또, 뭐라구. 하여튼 굉장했어. 그 형이 상을 세 개나 탔거든.』 『세 개씩이나?』 『그럼. 인기가 제일 많았어. 부럽더라 정말.』동생의 이 말을 듣자 내 생각이 틀렸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좀 멋쩍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박임선(명지대학 가정학과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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