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녘의 구성진 가락·춤사위, 명맥 끊길까 걱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함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애원성’의 보유자인 김길자(왼쪽)씨와 박옥순씨가 국립극장 앞마당에서 시연했다. [김형수 기자]

머리털 나고 처음 붙여봤다는 속눈썹이 어색한지 김길자(84)씨는 눈을 자주 깜박거렸다. 가체머리를 올린 박옥순(88)씨는 “이게 다 선배들한테 직접 들어 고증한 거라우” 했다. 때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가을 하늘을 희롱하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청소년 하늘극장에서 열린 ‘2013 이북 5도 무형문화재 축제’에서 만난 두 사람은 60여 년 전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에 젖었다. 이날 무대에서 함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애원성(哀怨聲)’을 재현한 두 사람은 “3년 만에 열릴 예정이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연기돼 더 애틋하게 불렀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북쪽에 가족을 두고 와 요즘도 동생들 보고 싶어 신청하지만 매번 잘 안 되네요. 그럴 때면 고향에서 힘들고 고단할 때 흥얼거리던 ‘애원성’으로 마음을 달래지요.”

 함북 성진 보신여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2005년부터 ‘애원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동향 사람들 60여 명과 30분짜리 공연물로 만들었다. 함지박에 물을 담아 바가지로 두드리고, 가사의 뜻을 담은 춤을 개발했다. 1주일에 한 번 이북5도청 연습실에 모여 장단을 맞추고 춤사위를 연구하는 시간이면 이 좋은 게 사라지면 어쩌나 싶어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 전수자로 키우기도 했다. 새터민 교육에도 ‘애원성’ 배우기를 집어넣었다.

 “남쪽의 중요무형문화재와 달리 북쪽 무형문화재는 전승과 보존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없어 걱정이에요.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계류 중이라 모두들 큰 기대를 하고 있죠.”

 이날 축제에 선보인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인 ‘최영 장군 당굿’(보유자 서경욱)과 제3호 ‘놀량사거리’(한명순), 평안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 ‘평안도다리굿’(김남순),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 ‘평안도 향두계놀이’(유지숙) 등 11개 종목은 보유자와 회원들이 연로해 자칫 명맥이 끊길까 걱정이다. 3~6일 충북 단양 생태체육공원에서 열리는 제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도 이북 5도 실향민들이 출연하는데 300여 명 회원뿐이라 근력이 달린다.

 “북녘에서도 사라져가는 무형 유산을 우리가 맨손으로 지켰다는 긍지가 있지만 우리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몇 년 앞을 내다보기가 겁나요. 젊은 이수자를 지정해 지원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세요.”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