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논쟁의 자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후보는 지난23일 새해 들어 첫 기자회견을 갖고 국내외문제에 관한 그의 정견을 밝혔다.
김 후보의 정견발표는 그 개인의 정책상 포부나 견해를 밝힌 것이 아니라, 신민당의 정책상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인데 기자회견 내용 중 새로운 논쟁의 씨를 뿌릴 가능성이 있는 문제점들을 들추어 우리의 소신을 피력키로 한다.
김 후보는 소련을 포함한 동구제국과의 외교 또는 준외교의 길을 터놓아야 하며 미·일·소·중공 4대국으로부터 전쟁억제의 공동보장을 얻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이 비 적성 공산국과의 교역을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야당 대통령후보가 거기서 진일보하여 소련 및 동구국가들과의 수교를 주장하게 되었다고 해서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반공이 우리 국가존립을 위한 제일의적인 국가목표로 돼있는 한국에서 소련 및 동구공산국가들과 수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정책면에서 추구하고 있는 기본노선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장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의 국제정치상 진로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산국가와의 수교론을 선거전의 「이수」로 대담하게 들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사상적 혼란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고, 또 이 때문에 도리어 선거분위기가 흐리게 되고,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국시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면 이와 같은 「이슈」의 제기는 위험스러운 것으로 경고해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김 후보의 지론인 4대강국으로부터 전쟁억제의 공동보장을 얻자는 주장은 상기 4대 강국의 남북한에 대한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른데다가 2차대전 후 25년이 지난 오늘까지 「유엔」내외를 통해 한번도 자리를 같이해 본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낱 환상적인 기대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솔직이 지적하고 싶다. 정책이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가교의 역할을 지니는 것이라 하지만, 그것을 객관성·현실성이 없는 환상적 기대 위에서는 결코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김 후보는 남북간에 기자·서신교류·체육인 왕래 등 일련의 긴장완화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비정치적 분야에서 남북교류로 남북간에 가로놓여 있는 장벽을 점진적으로 뚫어보자는 것인데 북괴가 전쟁준비를 계속 강화하면서 남침의 기회성숙만을 기다리고 있는 판국에 남북교류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북괴는 「남북교류」이니 「평화통일」이니 하는 말을 되풀이 사용하면서 그 남침의도, 동족살육 노선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는데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그들의 감언에 놀아나는 세력이 남한에 생겨난다면, 대한민국은 결국 화를 입게될 것이다. 남북교류란 북괴가 무력 및 폭력에 의한 대한민국전복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였음을 행동으로 입증하고, 또 그렇다는 것을 우리측이 확인할 수 있다는 대 전제하에서만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해 둔다.
향토예비군문제에 관해서, 작년 말에 김 후보는 그 완폐를 주장했다가 여·야간에 격심한 논쟁·대립을 일으켜, 그 뒤 대안을 내놓아 일단 매듭을 지었던 것인데, 그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향토예비군의 「전면완전폐지」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진의가 어디 있건 간에 유감스러운 일이다.
김 후보는 또 국내문제에 관련하여 세제 심판 소의 설치, 농협의 조직혁명, 노동입법의 전면 재정비등 구체적 정책방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다가오는 선거를 법과 질서 속에서 공명정대하게 치르기 위해 여야협의기구의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주의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원초적인 조건이 공명선거에 있음은 새삼스런 재언이 필요치 않는 바로서 이점에서 『이번 선거가 법과 질서 속에 이루어져 공명한 심판아래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선거결과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여야정치인들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요, 이를 위해 여야선거협의 기구의 제안은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비추어서도 충분히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거듭 강조돼야할 것은 외교·국방문제 등 국가안보에 관련되는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초당파적인 협의를 거쳐 합리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문제들은 되도록 선거전에 있어서의 「이슈」로 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분단된 국가에 있어서의 총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