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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100회 파리회담-2년여의 입씨름과 양상 달라진 월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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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전이 협상과 전장의 양면을 갖게된지도 오는 25일로 만2년. 「종전」을 겨냥한 이 두개의 측면은 그 동안 제나름대로의 변화를 겪었다. 특히 협상 「테이블」쪽이 쳇바퀴 식 공전을 거듭 한데 반해 전장 쪽의 정세변동은 괄목 할만했다. 최근 들어 「사이공」의 군사전문가들이 종전의 가능성을 강하게 점치는 것도 바로 「전장의 정세변화」에 기대를 걸고있기 때문이다.
21일 제1백회 본 회담을 여는 「파리」평화협상은 여전히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7개 원칙·5항목 안(미국 측), 8개 항목·10개항목안(월맹 측)등 분주하게 제안되었던 갖가지 협상 안은 단 하나도 「의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2년이 넘도록 「흥정의 기초」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파리」회담이 이처럼 부진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전장의 상황」에 있었다. 「로저즈」미 국무장관의 말처럼 『흥정이란 양쪽의 힘이 엇비슷해야』성립되기 때문이다. 사태의 호전을 위해 끝없는 확전을 거듭했던 미국의 입장과 최후의 승리가 목전에 왔다고 확신했던 월맹의 판단사이에는 애초부터 협상이 성립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69년7월 「닉슨·독트린」이 발표된 후 「전장의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월남화 계획의 진척과 함께 주월 미군의 대규모 철수가 단행된 것이다. 철군은 「닉슨·독트린」이 발표되기 한달 전의 54만3천명 선을 「피크」로 69년말 47만4천, 70년말 34만4천이라는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닉슨」대통령은 오는 5월말까지 28만4천 선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며 「레어드」국방장관은 이 시한과 거의 때를 맞춰 『미 지상군의 전투임무가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평화회담에 대한 공산 측의 기본적인 전제―주월 미군의 철수에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쪽의 군사적 상황이 「단 기간 안에 전면승부」를 기대할 수 없도록 되었다는 점이다. 「베트콩」의 전략변화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월남에 투입되었던 월맹정규군들은 모두 「게릴라」소조로 재편성되었으며 탄약·의약품은 자체 조달토록 지령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베트콩」들의 낙원으로 통하던 제3(「사이공」주변)·제4(「메콩·델터」지방)군 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산 측의 이 같은 전략변경은 그 저변에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모택동 식「게릴라」 전술에 의하면 소조·탄약자급 등은 제1단계의 전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베트콩」들은 이미 60∼62년께에 똑같은 전략을 택했었다. 따라서 이번의 전략변경은 시간적으로 8년 이상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 측의 「강요된 침체」에 대한 미국 측의 대응책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군의 철수가 개입의 철회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공언하는가하면 「캄보디아」「라오스」의 지원확대를 비침으로써 「닉슨·독트린」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72년 대통령선거까지를 「해결의 시한」으로 못박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 지상군개입을 강화하고있다.
「사이공」의 군사전문가들은 「닉슨」의 이와 같은 양면작전을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하나는 미군철수기간 혹은 철수직후에 공산군의 대규모공세를 예방하기 위한 「보급분쇄작전」이라는 풀이이다.
지난해 6월30일에 천명했던 「캄보디아」불개입정책이 실질적으로 변질되었던 일, 호지명 「루트」의 파괴를 위해 월맹은 물론 「라오스」「캄보디아」까지 폭격했던 점등이 이를 반증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풀이는 『확전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는 소수견해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다.
또 다른 한가지 풀이로는 월남정권의 수명을 연장, 자주의 기틀을 마련하여 공산 측으로 하여금 군사적 승리의 환상을 깨뜨리고 진지한 태도로 협상에 응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군의 전투부담이양 후에도 힘의 균형을 이룩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할 것이다.
「사이공」에서는 지난해 10월 「닉슨」이 발표한 5개 조건 중 「즉시휴전」이 제의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하고있다. 이 같은 제안은 「힘의 균형」을 자신하면서도 군사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인식하고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닉슨」대통령은 시간이 공산 측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군사·비 군사 면에서 적에게 보여 주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월-「캄」에의 지원강화는 이런 관점에서 풀이돼야할 것이다. 【사이공에서 신상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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