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채순임 할머니 "사는 게 참 재미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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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 100세가 된 채순임 할머니(왼쪽)가 며느리 이상자(58)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서울 용산구에 사는 채순임(100세·1913년생) 할머니는 요즘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올해 5월 경기도 일산신도시 꽃박람회를 갔다 왔다. 꽃을 가리지는 않지만 들꽃·채송화 등을 더 아낀다. 지난겨울에는 강원도 여행을 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여전하다. 지난해 여름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수엑스포를 구경했다. 외국 전시관을 주로 둘러보며 다른 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나타냈고 강강수월래 영상에 감동을 받아 지금까지도 얘기를 꺼낸다. 예쁘게 치장하고 11년 전에 사별한 남편의 산소에 자주 들른다. 할머니는 집안 갈등의 해결사다. 얼마 전 손자며느리 중 한 명이 증손자며느리를 걱정하자 할머니는 “아직 어려서 그렇다. 좀만 나이 들면 네 친구가 될 사람”이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1일 기자가 방문해 “그리 먼 곳으로 다니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운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구경하는 사람이 뭐가 힘드냐”고 말한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뭔가 걱정을 하고 있거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 걱정하지 말아라.”

 할머니의 긍정적인 모습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난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구경 다니면서 “사는 게 참 재밌다”고 말한다. 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막내 며느리 이상자(58)씨는 “2년 전 백내장 수술 이후로는 병원에 가신 적이 없고, 혈압이나 당뇨약도 드시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말했다. 최근에 고손녀를 보면서 5대 가족이 됐는데, 이런 가족적 분위기도 할머니의 100세 인생에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채 할머니가 ‘장수지팡이(청려장)’의 주인공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노인의 날(2일)을 기념해 매년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 주는 장수 선물이다. 올해는 채 할머니를 포함해 1264명이 지팡이를 받는다. 1993년 이후 장수지팡이를 선물하고 있는데 올해가 가장 많다. 2008년 726명에서 5년 만에 1.7배가 됐다. 주민등록 나이 기준으로 100세를 따지기 때문에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안전행정부의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9월 현재 100세 이상은 1만3513명이다. 하지만 여기엔 1만28명의 ‘거주불명등록자’가 포함돼 있다. 주소지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한 주민등록 인구로 관리된다. 주소지가 있는 100세 이상은 3485명인데 이 정도가 살아있는 100세인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 임을기 노인정책과장은 “100세인의 공통점을 보면 첫 번째가 긍정적·낙천적인 사고 방식과 삶을 향한 의지이고, 다음으로 일이나 사회활동을 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올해 1월 102세로 사망한 일본의 시인 시바타 도요(1911년생)가 98세 때 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노래한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장석순(107세·1906년생) 할아버지도 그렇다. 80세에 뇌졸중이 왔을 때 희망을 잃지 않았다. 몸이 회복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99세까지 헬스클럽에서 매일 실내자전거를 4시간씩 타고 집에서 고무줄 당기기를 했다. 이런 태도 덕분에 마비된 팔다리가 돌아왔고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장 할아버지의 또 다른 장수 비결은 두뇌 건강이다. 막내 아들 장제원(60)씨는 “아버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읽으신다”고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런 100세인의 건강 비결은 무얼까. 첫손 꼽히는 것이 소식(小食)이다. 한경학(100세·서울 용산구) 할아버지는 작은 밥 한 공기로 정해진 식사량을 넘기는 법이 없다. 통계청이 2011년 100세가 넘은 고령자 15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절반(54.4%)은 ‘절제된 식습관’을 가장 먼저 장수비결로 꼽았다. 같은 통계청 조사에서 선호하는 음식을 묻는 질문에 노인 10명 중 7명(67.5%)이 “채소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또 술·담배를 가까이하는 100세인은 찾기 힘들다. 서울대 곽충실(영양학) 교수는 “100세가 넘은 노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규칙적으로 챙겨 먹고, 골고루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혜미·이서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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