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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중앙문예당선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다시 톱질을 한다.
언젠가 잘려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일상의 고단한 동작에서도
이빨을 번뜩이며, 나의 몸은 정확해,
허약한 시대의 급소를 찌르며
당당히 전진하고 살아오는 자.
햇살은 아직 구름깃에 갇혀 있고
차고 흰 소문처럼 눈이 오는 날
나는 먼지낀 창가에 서서
원목의 마른 내력을 켜고
갖가지의 실책을 다듬고 있다.
자네는 아는가,
대낮에도 허물어진 목수들의 날림 탑.
그때 우리들 피부 위를 적시던
뜨거운 모정의 긴긴 탄식을
그러나 도처에 숨어사는 기교는
날마다 허기진 대팻날에 깎여서
설 익은 요령들만 빤질빤질 하거던.
밖에는 지금
집집이 제 무게로 꺼져가는 밤,
한밤내 눈은 내리고
드디어 찬 방석에 물러앉는 산
내 꿈의 거대한 산이
흰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죽은 목수의 기침소리 들리는
깊은 잠의 숲속을 지나, 나는
몇 개의 차디찬 예감,
새로 얻은 몸살로 새벽잠을 설치고,
문득 고쳐잡는 톱날에
동상의 하루는 잘려 나간다.
잘려나간 시간의 아픈 빛살이
집합하는 주소에 내 목이 뜬다.
온갖 바람의 멀미속에서
나의 뼈는 견고한 백록이고
머리카락 올올이 성에가 희다.
저마다 손발이 짧아
나누는 눈인사에 눈을 찔리며
바쁘게 드나드는 이 겨울,
또 어디에선가
목수들은 자르고 있다.
관절 마디 마디 서걱이는 겨울을
모색의 손 끝에 쥐어지는
가장 신선한 꿈의 골격을
나도 함께 자르고 있다.
언젠가 잘려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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