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복에 구김 가면 ‘죽음’ … 깃발 운반할 때 흔들리면 영창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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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호 10면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의장대가 국군의 날 식전행사 때 선보일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바로.” 지휘관의 구령에 맞춰 의장대 160여 명이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 중간에 자리 잡았다. 축구장 10배 이상 크기의 활주로에 긴장감이 흘렀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동작 시범이 이어졌다. M16A1 소총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일정한 높이에서 일정한 궤도로 재주를 부렸다. 실수도, 흐트러짐도 없었다. 의장대에 좀 더 다가가 봤다.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야, 빨라. 속도 좀 늦춰” 왼쪽에 서 있던 선임병의 지시가 떨어지자 “천천히 돌리시랍니다”는 지시가 총을 돌리는 와중에도 옆으로 전해졌다. 한여름, 피서지를 갔다 온 사람들처럼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연신 땀이 흘렀지만 닦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동작 시범을 비롯한 모든 연습이 끝나는 2시간여 동안 조금의 허튼 움직임도 없었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꼼짝하지 않는 모습에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국방부 의장대 박외성 병장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의장대로서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느낌이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국군의 얼굴’ 의장대의 세계

 의장대는 흔히 ‘국군의 얼굴’이라고 불린다. 외국 국빈을 영접하는 의전행사와 국가 경축일 행사, 대민(對民) 축제 지원을 통해 군의 명예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의장대 내에서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히틀러가 폴란드 의장대의 어수선한 모습을 보고 침공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흐트러짐 없는 의장대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의장대원이 행사 시 병장 계급장을 달 수 있도록 허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장대가 국군의날 식전 행사에서 선보일 동작 시범은 약 15분 분량이다. 행사기획단 김정식 소령은 “9월 2일부터 일요일, 그리고 추석 당일만 제외하고 하루 7~8시간씩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해 해군의장대 성누가(21) 병장은 “땡볕에 활주로에 오래 서 있으면 현기증이 나 픽픽 쓰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한 행사를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국군의 날을 앞둔 27일, 정식으로 행사복을 갖춰 입은 의장대가 예행연습 중이다. 김상선 기자

 행사가 주 임무인 의장대는 특이한 전통이 있다. 행사복과 깃발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우선 행사복 관리부터 엄격하다. 행사복은 보통 2인 1조로 정비한다. 한 명은 옷을 다리고 한 명은 옷이 구겨지지 않게 잡는다. 보통 선임이 다림질을 한다. 진해 해군 의장대 박규언(22) 병장은 “우스갯소리로 ‘주름에 손이 베일 때까지 다림질하라’고 말한다”며 “행사복의 청결함은 의장의 기본이다”고 말했다.

 이동할 때도 긴장의 연속이다. 행사복을 입은 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땐 절대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앞 의자를 다소곳이 잡고 간다. 구김 방지를 위해 버스에 오른 뒤 무릎 춤까지 행사 바지를 내리고 벗은 채로 이동하기도 한다. 행사복을 운반할 땐 땅에 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엄지·검지 사이에 옷걸이의 목을 걸고 팔을 위로 곧게 편 상태에서 운반한다. 행사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품위 유지’를 위해 절대 뛰지 않는 것도 전통이다.

 깃발도 마찬가지다. 깃발은 종류에 따라 군부대나 지휘관을 상징한다. 깃발을 운반할 땐 어떤 일이 있어도 뛰거나 팔을 젓지 않는다. 깃발의 대가 흔들리거나 기가 땅에 끌리는 순간 그 부대, 혹은 장군을 모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깃발은 세탁하지 못하며, 더럽혀질 경우 새로 지급받는다. 진해 해군의장대 중대장 박대헌 원사는 “의장대는 군의 자신감을 대표하기 때문에 행사복과 깃발은 곧 군의 명예”라고 말했다.

“점호는 떨어지는 낙엽도 멈추는 시간”
절도 있는 모습만 보여야 하다 보니 일반 군에 비해 내무생활은 엄격한 편이다. 특히 해군과 해병대 의장대가 엄하다. 해군의장대 예비역 김모(25)씨는 “우리는 당직사관 점호가 끝나면 최고참 병장이 점호를 한 번 더 했다”며 “의장대 점호시간은 떨어지는 낙엽도 멈추는 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혼쭐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병영 선진화 흐름에 얼차려를 없애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국방부 의장대는 올해 초부터 병사들 간의 교육에서도 일체의 얼차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통상 동작의 빠른 숙달을 위해 교육 중 팔굽혀펴기와 같은 가벼운 처벌은 허용돼 왔다. 국방부 의장대대장 곽희덕 중령은 “군의 얼굴인 의장대는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며 “교육 중 얼차려를 없앤 후 분위기도 좋아지고 실력도 예전 그대로다”고 말했다.

 2012년 기준 국방부 의장대는 총 1419건의 행사를 지원했다. 이 중 500여 건(현충원 참배 포함)이 민간 관련 행사다. 그만큼 의장대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용산 전쟁기념관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행해지는 정례 의장행사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다. 국방부 의장대대장 출신인 육군교육사령부 최용섭 박사는 “군 이미지를 무력만이 아닌 평화와 문화의 창조자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특히 중국 관광객의 80%가 청와대를 찾는데 그 앞에서 이뤄지는 의장 행사가 인기”라고 말했다. 국방부 해군의장대장 박종철 소령은 “최근에는 시범 행사 후 아이돌 음악을 틀어 놓고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스스럼없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일반인들과 친근해지려는 노력은 동작 시범에 변화를 주고 있다. 동작 시범을 더 이상 엄숙한 군가나 구령에만 맞춰 하지 않는다. 최신 가요에 맞춰 안무를 개발해 선보인다. 군가에 맞춰 엄숙하게 등장한 의장대가 갑자기 소녀시대의 ‘Gee’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식이다. 30년간 공군에서 복무한 공군본부 의장대 관계자는 “어떻게 하면 친근하면서도 신뢰도를 높여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시작됐다”며 “최근에 싸이 ‘젠틀맨’에 맞춰 동작 시범을 보였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해군 의장대 46년 창설 … 세계대회 우승도
국군 의장대는 크게 국방부 의장대, 육·해·공군본부 의장대, 진해기지 사령부 해군의장대, 공군 교육사령부 의장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확한 규모는 보안사항이지만 1000명 정도로 파악된다. 의장대의 역사는 각 군마다 다르다. 가장 전통이 있는 의장대는 해군 의장대다. 46년 경남 진해에서 창설됐다. 76년 8월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의장 경연대회에서 198개 팀 중 그랑프리(1위)를 수상할 만큼 수준이 높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의장대들이 사용하던 ‘아너가드(Honor Guard·명예를 지키는 이)’라는 마크를 내려 줬다. 이 마크는 현재까지 해군의장대만이 착용하고 있다. 국방부 의장대가 창설된 건 89년 전두환 대통령 때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군에서 정예 의장대를 차출해 연습시키던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 새로운 부대를 창설했다. 창설 이후 주요 국가 행사는 300여 명 규모의 국방부 의장대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최용섭 박사는 “의장대는 국력을 나타내는 표상이며 한국을 방문하는 외빈들에 대한 외교활동의 첫 단추”라며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영국 버킹엄 궁전의 의장행사처럼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요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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