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자 실패 고백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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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호 20면

“삐약삐약.” 하굣길에 노란 털이 보송한 병아리들이 초등학생들의 눈과 귀를 잡아 끌곤 했다. 귀여운 자태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병아리 장수가 한마디 툭 던진다. “너무 귀엽지? 집에 가서 잘 키워서 닭으로 만들어 봐.” 많은 아이가 이 말에 혹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본능까지 발동했다. 병아리를 보고 계란을 낳아 돈을 벌어주는 어미 닭까지 상상했으니 말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바람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닭이 되긴커녕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정성이 부족했나 자책도 해봤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닭이 될 수 없었던 병아리의 진실은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됐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이미 약골로 감별된 놈들이었던 것이다. 박스 안의 모든 병아리가 병이 든 상태였으니 그 안에서 열심히 골라 정성스레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실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피하라
오랜 기간 주식투자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치열하게 분석해 열심히 고른다고 골랐지만 바람대로 성장해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종목의 대부분은 원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병든 병아리로 가득 찬 박스에서 허우적댔던 것과 같았던 필자의 투자 실패 사례들을 묶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압축된다.

첫째, 업력이 짧은 신생기업이 야심 차게 제시하는 미래 그림에 투자해 수익을 내본 적이 거의 없다. 미국 가정에 휴대용 노래 반주기를 보급하겠다는 꿈,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모든 건물에 제공하겠다는 계획, 금단의 땅에 사람들이 즐기고 놀 만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의욕은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사업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원대한 꿈에 동참했던 투자자들은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던 경영자의 잘못이 아니라 성사 확률이 낮은 계획에 과도한 기대를 가졌던 필자를 포함한 투자자들의 실수였다.

일러스트 강일구

둘째,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대안 상품이 있어 높은 가격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지만 이상하게도 주주가 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기업에 투자한 경우는 꼭 실패로 귀결됐다. 업종으로 보자면 제지·항공·증권업이 그랬다. 투자 당시에야 눈길 끄는 아이디어가 있었겠지만 차별화 되지 않는 제품이 때를 잘 만나 올린 고수익은 경쟁이 심화되거나 원가가 올라가면 금세 사라졌다. 장기투자에는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같은 잘못 반복 않는 게 투자 성공 지름길
셋째, 고객이 제한적인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만큼이나 위험하다. 단골손님이 한 명밖에 없는 식당을 운영한다면 그 식당의 운명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선 어떤 경쟁력을 언급하더라도 고객이 발을 끊는 순간 결국 사업의 끝이 보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장비회사, 통신 장비회사가 이런 운명에 처했을 확률이 높다. 필자는 정부를 상대로 한 사업에서 계획대로 일이 진척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 또한 고객이 정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넷째, 시대의 유행을 타고 떠오른 제품이 오랜 기간 그 인기를 유지할 거라 여겼던 기대는 말 그대로 섣부른 기대에 그치고 말았다. 청소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캐주얼 의류 브랜드, 학부모들이 직접 만들어 인기의 중심에 섰던 교육 브랜드, 주당들이 술자리의 스타로 등극시켰던 주류 브랜드에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언급조차 하지 않는 한때의 유행으로 흘러간 이름들이다. 유행과 트렌드를 구별하는 일은 박스 속 병아리들의 건강상태를 감별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세상물정 몰랐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펀드매니저가 된 지금까지 범했던 실수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 글을 읽는 투자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건강한 병아리들이 가득 찬 박스를 우선 찾고 그 안에서 다시 튼튼한 병아리를 찾는 것이 투자의 정석임을 기억한다면 큰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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