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분쟁 중 성폭력은 반인륜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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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앤젤리나 졸리 유엔난민기구 특별사절(左),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右)

지금 시리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끔찍한 범죄들은 바깥 세상에도 전해진다. 유엔은 시리아 전역에서 공포 확산과 처벌의 수단으로 성인남녀는 물론 어린이에게까지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근 유엔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 여성은 아이들을 살해하겠다는 위협 때문에 성폭행을 당한 뒤 강간범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 청소까지 하도록 강요받았다. 오빠가 지명수배됐다는 이유로 강간당한 여자 대학생의 사연도 보고서에 담겼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생존자가 두려움과 수치심, 살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도움을 구하러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성폭력은 보스니아부터 르완다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벌어진 거의 모든 주요 분쟁에서 무기로 악용됐다. 우리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다섯 살짜리 딸이 성범죄 피해를 본 한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소녀는 너무나 어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그 아이의 고통과 전 세계에 있는 수백만의 피해자는 우리에게 행동을 촉구한다.

 국제사회는 집속탄과 지뢰, 그리고 불법무기 거래를 금지하는 각종 협정을 만들었다. 처음엔 이런 협정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각성을 통해 이를 불법화하는 국제사회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전 세계가 분쟁지역에서 일어나는 강간과 성범죄의 근절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성폭력 가해자 중 극소수만 기소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캠페인을 함께 시작하게 된 것은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파괴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함을 알리려고 한다. 전 세계 정부들이 힘을 합쳐 분쟁지역 성범죄 근절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지난해 이런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난 4월 런던에서 주요 8개국(G8) 외무장관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인 약속(분쟁 중 성폭력 근절에 관한 G8 선언 채택)을 했다. 지난 6월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총회 기간 중인 지난 24일 ‘분쟁 중 성폭력 근절 선언’도 발표됐다. 유엔사무총장의 성폭력 특별대표 중동·유럽·아프리카·아시아 12개국 지도자가 뜻을 모아 만들었다.

 이 선언에 따르면 분쟁 중 성폭력을 제네바협정과 ‘국제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대한 제네바 협정의 제1추가의정서’의 위반으로 간주해 전 세계 어디서든 관련 성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다. 분쟁 중 성범죄자를 평화협정으로 사면하는 것도 금지해 이들이 설 땅이 없도록 해 군지휘관들은 성범죄 책임을 인식하게 했다. 아울러 분쟁 중 성범죄 증거들을 법정에서 인정해 더 많은 성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게 했다.

 또 분쟁지역의 강간 및 다른 성범죄 조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국제 의정서를 2014년 중반까지 마련하게 된다. 이 의정서는 여성 참여와 난민 보호, 군대 및 경찰 훈련 조항도 포함하게 된다. 이 선언에 동의하는 나라들은 모든 분쟁 및 인도주의적 활동의 최전선에서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성범죄 위험에 놓인 국가들의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지원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모든 일원이 이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전 세계 각국의 정부가 이 선언에 동참하기를 희망한다. 모두가 함께한다면 강간과 성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가 전환점을 맞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성범죄는 반드시 처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