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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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네 아가씨들의 이상적인 남편 감을 묻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언제나 외교관이라고 나타나고 있다. 그런 외교관들의 꿈은 대사가 되는 것이다.
이번 개각에 따라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 나라 대사들에도 대폭적인 이동이 곳 있을 것이라고 한다.
대사에는 특파 대사와 상주 대사가 있으며 후자는 관례로서 특명전권대사의 칭호를 갖고 있는 게 보통이다.
특파 대사의 기원은 고대「이집트」와 희랍 시대 때부터지만, 상임 대사는 15세기 중엽 「이탈리아」에 출현했던 도시 국가 때부터 였다. 이 때에는 대사는 주로 오늘의「스파이」와도 같은 일을 했었다.
19세기 이전, 교통·통신 수단이 그다지 발달되지 못하던 때에는 대사가 자유재량으로 처리한 일이 많았다. 이래서 대사의 권위도 엄청났다.「메테르니히」·「비스마르크」·「카불」등 역사상 쟁쟁한 권력자가 모두 대사 출신이었던 것도 충분한 까닭이 있다 하겠다.
외교 사절에 특명 전권 대사, 특명 전권 공사, 관리 공사, 대리 공사의 4계급이 마련된 것은 1815년의「빈」회담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대사는 원래가 군주국 사이에서만 교환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대사를 파견하기 시작한 것도 1893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1914년 이후에야 비로소 「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러시아」·미국 등이 서로 대사를 교환하게 되었다.
한말에 우리 나라에 온 외교관이 모두 공사 급이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스·모겐도」는 국력을 결정하는 요소들로서 지리·천연 지원·산업 능력·군사력· 인구·국민적 성격·국민의 사기 외에도 외교의 질을 묻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외교의 질』은 대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늘의 대사는 예전만큼의 권위나 권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 호주머니도 넉넉하지 못한 게 보통이다.「로렌스·뒤렐」의<「알렉산더」사중주곡>제2부의 주인공「발타잘」도 평생의 꿈이던 대사가 되었으나 대사 예복을 새로 맞출 여유가 없어서 전임자의 옷을 싸게 물려받았다. 한때 미국의 인도 대사였던「갤브레이드」의 회고담에 의하면「워싱턴」에 돌아온 대사들끼리 모이면 으레 돈타령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의 대사는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사교의 꽃이다.「파티」도 많이 열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나라에는 백만장자들을 보내는 일이 많다.
그러나 국위를 선양하고 정부의 견해를 납득시키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대사의 개인적 식견과 인격이 중요하다는 사실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나 대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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