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때 미-영 작전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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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 21일 AP동화】1944년 6월6일 연합군의「노르망디」상륙 작전을 7개월 앞두고 당시의「헨리·아널드] 미 육군 항공단장은 영국 기들이「유럽」이 대륙 폭격에 불량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비난, 폭격 성과가 개선되지 않으면 미 군기의 파 영을 중지하겠다고 위협한 사실이 21일 이곳과「워싱턴」에서 동시에 공표 된 양국 합동참모 회의의 기록에서 드러났다.
「아널드」장군은 영국 기들의 폭격 능력이 형편없다고 신랄히 불평했다. 폭격기 중 50%만이 작전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빈약했으며 폭격 우선 순위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합동 참모회의 (CCS)기구는 진주만 사건이 있은 후 한 달만에「루스벨트」미 대통령과 「처칠」영국 수상간에「워싱턴」에서 있은 회담에서 창설을 본 것인데 이 기구는 연합군 측이 승리를 거둘 때까지 일본까지도 포함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의군 사 작전을 담당했으며 47년 해체되었다.
CCS의 10만 문서 중 45년 l2월31일 것까지만 이날 공개되었다. 나머지는 후에 공표 될 것인데 42∼45년간의 문서 중 안보를 이유로 내세워 보류된 서류 뭉치들도 많이 있다.
「유럽」의 전략은 미-영간의 견해 차이였는데 문예 상에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영국은 연합군의 전략이『적이 전투에 유도 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최대한의 병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있었으며 영국이 당초 원했던「프랑스」남부로부터의 연합군 상륙을 반대했었다.
또 이 기록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사실은 당시 미 육군 참모 총장이었으며 CCS의 위원이었던「조지·마셜」장군은「프랑스」영「인도차이나」를 현 휴전선보다 1도 아래인 16도선으로 분할 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마셜」은 또 아시아지역에 있어서는 일본이 장악했던 지역의 점령과 무장 해체에 있어 중국 본토를 책임진 장개석 총통이 절도 선까지 장악하고 그 이하는 영국의「루이스·마운트베튼」경의 동남아 군이 담당토록 제의한 한편, 나머지 지역은 미국이 장악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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