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복지·성장 사이서 갈팡질팡 … 재정적자만 더 커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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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성화’를 최우선에 두면서 ‘공약 이행’을 최대한 추진하고 ‘건전 재정’도 지키겠다-. 기획재정부가 26일 내놓은 내년 예산안 편성의 기본 방향이다.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뜻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어느 목표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올해 투자·소비활성화 대책이 마중물 역할을 해서 내년에는 기업이 경제 활성화를 선도하면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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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실은 어둡기 짝이 없다. 경제 활성화와 공약 이행은 재원을 놓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이 둘을 중시할수록 건전 재정은 멀어진다. 정부가 무슨 수로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라 곳간 사정이 나쁘다. 재정이 만성 적자에 빠져 있어서다. 기재부는 예산안에서 내년에 국세와 세외수입, 기금을 합쳐 모두 370조7000억원을 거둘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는 경제성장률이 3.9%에 달할 것이란 전제에서 나온 숫자다. ‘장밋빛’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 그런지는 올해 예산안을 복기해 보면 바로 드러난다. 이명박정부는 올해 성장률 4%를 전제로 총수입을 372조6000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으면서 지난 4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12조원 규모의 세입확충을 했는데도 또다시 7조~8조원의 세입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국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세입 여건이 개선되기는 어렵다. 정부 예산안은 이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았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세입이 9% 이상 늘어난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거듭되는 정부의 세입 부풀리기 예산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로선 세입 전망을 낙관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쓸 돈이 많기 때문에 1원이라도 돈 들어올 데가 있으면 모두 예산으로 잡아놓는 게 예산 당국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곳간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자칫 재정만 멍드는 악순환이 가중될 수 있다. 내년 예산 가운데 보건·고용을 합한 복지 예산은 총예산의 30%를 차지한다. 올해보다 8조7000억원 늘어난 규모로, 이는 총지출 증가액의 54%에 달하는 규모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은 “정부 예산안은 결국 복지정책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라며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하지 않으면 2030년에는 국가부채 비율이 급증해 그리스 꼴이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부채는 이미 폭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가부채는 올해 464조6000억원에서 내년 515조200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하면서 국민 1인당 국가부채도 1021만원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36.5%에 달한다.

 나라살림의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족할 판에 이해하기 어려운 쓰임새도 적지 않다. 주요 지방 공항들이 예산 잡아먹는 하마로 전락했는데도 흑산도와 울릉도에 5년간 6000억원을 들여 소형 공항을 짓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우선순위와 원칙이 분명치 않으니 국회 심의 때 휘둘릴 가능성도 크다. 각 정부부처는 이미 국회에서 증액 로비를 벼르고 있다. 이상빈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균형 재정은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다. 재정 형편에 맞게 공약 이행 시기를 조절하고 경기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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