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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공포·불안·우울 … 긍정의 힘이 '마음의 암'을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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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가 운영하는 웰빙교실에서 임지현 미술치료사(오른쪽 끝)가 암 환자들에게 그림치료를 하고 있다. 김현진 기자

주부 강현경(가명·47·경기도 광명시)씨는 3년차 암 환자다. 샤워를 하다가 오른쪽 가슴에 딱딱한 멍울이 잡혀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유방암으로 진단받았다. 갑자기 돌 덩어리가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담당 의사는 암 크기가 작아 치료는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 강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항상 우울했다. 치료를 받아도 소용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그는 병원에서 미술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

마음에 자라는 암 ‘디스트레스’

암은 몸 뿐 아니라 마음에도 자란다. 이른바 정신종양이다. 마음의 암은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자란다. 나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힘들다.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충격·분노·공포·불안·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김종흔 박사는 “암은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커 환자를 정신적으로 약하게 만든다”며 “절망감에 빠져 치료를 거부하고 자포자기하기 쉽다”고 말했다.

 암으로 육체적 고통과 함께 심각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는 셈이다. 막대한 치료비나 암으로 변한 일상생활도 부담이다. 암이 완치됐다는 판정을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평생 언제든지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암 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부른다.

 국립암센터는 2009년 위·간·폐·대장·유방·자궁암 환자 379명을 대상으로 암 환자 디스트레스 현황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암 환자의 42.1%가 디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41.8%)·불면증(40.9%)·불안장애(28.7%) 호소했다.
 
암 예후 악화시키고 가족도 우울증

디스트레스는 그 자체로 암을 악화시킨다. 스트레스로 치료 반응을 떨어뜨리는 식이다. 김 박사는 “항암치료를 받아도 소용없다며 치료를 거부한다. 투병의지가 낮다보니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아 예후가 나쁘다”고 말했다. 2003년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노재경 교수팀은 위암·대장암·유방암 진단 환자 중 절제수술을 받은 환자 223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우울과 불안이 심한 환자일수록 투병의지가 낮았다.

안락사를 요구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김 박사는 “암 환자는 아프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스트레스를 방치하다 암이 악화된다는 보고가 많다”고 말했다.

 가족의 삶도 피폐해진다. 국립암센터 박종혁·박보영 박사 연구팀은 2011년 암환자 및 가족 990쌍을 대상으로 디스트레스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암 환자 가족의 82.2%는 우울증상이 있었고, 38.1%는 불안증상을 보였다. 암을 ‘가족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종혁 국가암관리사업본부 암정책지원과장은 “암 환자 가족은 장기간 간병으로 육체적·정서적으로 지친다.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가족도 디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엔 치료법이 발달하면서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이 길어졌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이 1996~2000년 44.0%에서 2006~2010년 64.1%로 높아졌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이후 10명 중 6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 김종흔 박사는 “이제는 암 환자도 만성질환자처럼 생활한다”며 “디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하기 힘들다면 긍정적으로 생각

디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할까. 암 환자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냐다. 누구나 우울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한동안 우울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곧 툴툴 털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생각’이다. 항암제를 바꾼다고 가정하자. 다른 약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절망하기 보다 다른 약은 잘 듣겠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긍정적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림그리기·운동·명상·산책·등산·글쓰기 등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규칙적으로 실천한다. 올해 서울아산병원 암교육센터는 유방암환자 51명을 대상으로 6주 동안 명상을 실시했다. 그 결과, 명상에 참여한 환자는 불안·피로감이 줄었다. 암 환자 스스로 느끼는 삶의 질도 높아졌다.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도 좋다. 무조건 참으면 자신 뿐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디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전문가에게 디스트레스 이유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증상 개선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 박사는 “우울증이 2주 이상 계속되는 심한 디스트레스는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스트레스(distress)=암에 걸렸을 때의 충격·현실부정·분노·공포·불안·우울·자책·고독 등 다양한 감정반응이 투병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상태를 말한다.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가 정의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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