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매춘 왕국' 이대로 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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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여성부의 용역을 받아 조사 발표한 '한국의 성매매 규모와 현황'에 관한 보고서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전업 여성이 33만명이고, 그로 인해 소비되는 화대의 규모가 한 해 24조원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보고가 사실이라면 20~30대 한국 여성 25명 가운데 1명이 윤락녀이고, 20~64세의 한국 남성 가운데 20%가 한 달에 네번 이상 여자를 산 셈이다.

화대로 뿌려지는 24조원은 국내 총생산(GDP)의 4.1%이며 이는 농림어업(4.4%)에 버금가는 규모다. 이 같은 보고서의 내용만으로도 치욕과 분노를 누르기 힘든데, 여성개발원은 이것이 조사 방법상의 문제로 실제보다 훨씬 더 낮은 수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성매매에 관련된 여성의 숫자가 80만명을 넘고, 15~39세 사이의 가임여성 가운데 10%가 매매춘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수요 없어지면 공급도 사라져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춘이 없었던 시대는 없다. '포르노(porno)'라는 말이 '여성포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매매는 단순히 육체적 쾌락의 추구라는 차원이 아니라 남성 우위의 권력과 지배의 구조 속에서 생겨나고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역사상 일부다처제와 축첩제를 낳은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고, 돈으로 여성을 사서 성적 노리개로 삼는 '매춘'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육체를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이렇게 만연했던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동남아 같은 곳으로 '원정'을 가는 것도 부족해 외국인 여성까지 대거 '수입'할 정도니, 이에 비하면 폼페이의 방탕은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이 항의해도 신께서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작금의 사태에 분개한 분들이 중심이 돼 '성매매 거절 남성 서약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수요가 없어지면 공급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도덕적 재무장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시발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성매매의 심각성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천민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심장까지 병들게 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법을 지키며 정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이 무너지고, 돈이 된다 싶으면 무슨 짓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 성공하는 사회. 그렇게 모은 돈을 뭉치로 들고 다니며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아가씨들까지 상납하는 자들이 올라서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포르노성 스팸메일이 인터넷을 통해 거의 융단폭격을 하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민의 반을 상회하는 2천4백만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오늘날, 암세포처럼 파고드는 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과거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이 호기심에 잠시 들추어 보는 도색잡지와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다. 초등학생들이 숙제조차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요즈음, 어른들조차 낯 뜨거워할 장면들을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음란 동영상 채팅 사이트 이용자가 1천만명이 넘고, 이 가운데 미성년자가 43%에 이른다는 검찰의 발표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지만 현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 성매매 근절 정부 대응책을

이제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성매매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사회를 구하기 위한 각 개인들의 도덕적인 재무장,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감시활동은 물론이지만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더욱 지능적이고 포괄적이 된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대응책도 그만큼 세련되고 개발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경고의 빨간 불은 깜박이고 있다.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정부는 이후 벌어질 엄청난 사회적 붕괴에 대한 책임을 결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

金浩東(서울대 교수·중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