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김찬삼 여행기<미령사모아도서 제2신>|만선의 꿈에 향수도 잊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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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 나라 어부들의 신세를 지면서, 이 먼「사모아」섬에 와서 활약하고 있는 어선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나라 어선 단이「사모아」섬에 진출한 것은 1957년부터인데 그때는 개인회사의 몇 척의 선박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은 한국수산개발공사의 37척을 비롯하여 제동산업의 13척, 고려수산의8척, 동화주식의 6척 등 도합 8개회사에서 76척이, 이「사모아」섬에서 세계최고의 미 항이라고도 할 수 있는「팡고팡고」항을 기지로 하여 활약하고 있다.
지금은 남위 40도선 (2천7백km)까지 고기떼를 찾아 내려가서 주낙을 놓는데 대체로 한번 떠나면 70∼80일 동안 바다에서 살며 여기서는8시간 노동제도 없을 뿐 아니라 주말도 없이 오직 고기떼를 찾아 헤매며 만선이 되어야 기항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고된 일을 하면서도 고기를 잡는 재미에 고국에 대한 향수마저 잊는다는데, 이것이야말로 독서삼매경보다 더 드높은 어획삼매경이 아닐까.
적도지대는 무풍지대가 되어 조업에는 좋으나 고기가 적은데다가 고기 값이 싸 다고 하며, 남쪽으로 가면 춥고 거 파의 위협을 받지만 세계시장에서 환영을 받는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바다를 내다보니 고기를 잔뜩 싣고 입항하고 있는가 하면 모든 준비를 갖추고 어장으로 떠나는 어선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장으로 떠날 때『돌아간다』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어장이 주체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이런 말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과연 어민다운 언어의 표현이다.
어떤 어선을 보니 뱃머리에「남해 263호」라고 써 있는데 기지에 돌아온, 아니 기지에 간 이 배에선 선장들 할 것 없이 짐을 풀고 정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모두들 늠름한 모습들인데 어떤 선원의 머리는 바다에 적응되어서인지 항해 때 파도를 따라「바리캉」이 움직여져서 머리가 파도처럼 깎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선「마도로스」를 그리워하는「로맨틱」한 노래가 불리지만 여기서는 그런「무드」가 없다.
그리고 영화처럼 바닷가의 야자나무 아래서 원주민여성과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은 달콤한 낭만은 더구나 없다.
우리 어부들은 간혹 한국인선원「클럽」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한두 병 마시며 고작 벽에 붙어있는 우리 나라 여성의 사진들을 보는 것이 홀아비 생활을 하는 어부들의 단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이 섬은 미국의 개화에 따라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어부들이 낭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현재의 선박은「프랑스」에서 새로 만든 1백60t급을 비롯하여 일본의 중고품인 2백t급들이 대부분인데 한배에 평균 23명 꼴로 편승하니 1천7백 여명이 이「팡고팡고」에 드나드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와있는 우리어부며 선원들에는 김씨의 성이 많은지 어떤 원주민은「미스터·킴」이 곧「미스터·코리언」이 아니냐고 하며, 서로 지면도 하기 전에 나더러『당신 성을 맞혀볼까요?』하기에 그러 라고 했더니 그는「미스터·킴」일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연이겠지만 어쨌든 김씨가 많으니 지금까지 맞힌 것이 80%의 확률이었다고 하여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수산물을 다루는 부두에서는 우리 한국말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자세히 물어보니 우리말·영어·「사모아」말을 섞어서 쓴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겠지만 우리 나라 어부들은 원주민 노무자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세나라 말을 합친 이른바「에스페란토」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원양어업에 나온 우리 어부들이 고국에서와 같은 상소리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정말 모범적인 일꾼들의 참다운 모습을 쳐다보노라니 한국인으로서의 자랑을 품게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기뻤다. 여기서는 어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4만 불, 5만 불 짜리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잡은 고기를 도매 값으로 넘겨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고기의 종류에 따라 응당 가격이 다른데 가장 비싼 것은「앨버코」로서 5백40∼5백50불, 다음「머린」이 5백불, 그 다음「옐로핀」이 3백80불, 그리고「비그아이」가 최하위로서 2백80불을 받는다고 한다. 1백60t급의 어선으로 한번 출 어(70∼80일 동안)를 통하여 평균 80t의 어획량을 올린다고 하니 4만 불이 넘는 계산이다. 이들은 이 고기를 가지고 현찰이라고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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