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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무성영화시대>(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리랑』에 데뷔>
아마 1926년 3윌20일께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문수성 극단에 속해 있었고 그 극단은 함흥에서 공연 중이었다.
공연을 막 끝내고 화장실에 돌아와 있는데 키가 작고 똥그란 눈에 광채마저 띠고 있는 한 남자가 날 찾아왔다.
그 사람은 날 보더니 다짜고짜 두 손목을 꼭 움켜쥐고는 고개만 끄덕였다. 한참 있다『됐어 됐어!』라고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리고는 영화에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분이 바로 초창기 한국영화계의 귀재라 하던 춘사 나운규 선생이었고 그가 출연 교섭을 해온 영화가 바로 명작『아리랑』 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아리랑』에 출연하게 되었고 내 일생에 전환기가 되었던 것이다. 내 나이 15살 때의 일이다.
그때 춘사는『아리랑』의 각본을 다 써놓고 조선「키네마」사의 제2회작으로 기획 중이었다. 감독과 주연도 자신이 직접 맡기로 되었었다. 그러나 여주인공으로 출연할 배우가 마땅치 않아 고심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당시 영화배우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라고 몇 편 제작되지도 않았고 여배우는 좀 얼굴만 반반하면 그냥 데려다 배우로 쓰는 형편이었다.
마침 함흥에 들렀던 토월회출신의 복혜숙씨가 나를 보고는『아리랑』의 여 주인공역으로 적격자라고 춘사에게 귀뜸 해줘 춘사가 열차 편으로 부랴부랴 좇아왔던 것이다.
그때 극단에는 오빠 창운씨가 나의 매니저 격으로 따라다녔다. 오빠도 이왕 딴따라를 할 바엔 연극보다는 영화계에 나가는 것이 팔자를 고칠 것이라고 하며 허락했다.
그러나 나를 무대에 세워 한참재미를 보던 극단 측이나를 선선이 보내 줄 리가 없었다. 극단 측은 힘으로라도 나를 못 가게 막으려고 했다.
오빠는『출연료 한푼 못 받고 계약위반이 아니냐. 난 이제 내 누이를 더 고생시킬 수는 없다』며 따지고 들었으나 극단 측은 막무가내였다. 애당초 출연기간을 10일간으로 계약했던 것인데 1개월이 넘고 보니 계약위반은 명백한 것이었다.
이 무렵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극단들은 대부분 단원들에게 하루 세끼 밥도 제대로 못 먹일 정도로 적자공연에 허덕이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는 유랑 극단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떠날 때는 으례 여관비, 식비 등이 밀려 공연에 자강이 없는 삼류 배우들을 인질로 잡혀놓기가 보통이었다.
공연을 하려면 변사를 앞세우고 배우들이 장거리를 돌아다니며 관객을 끌어 모아야 했고 다음 공연지 까지 4∼5십릿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예사였다. 게다가 귀한 고무신이 닳을까봐 벗어들고 걷던 시절이었다.
어떤 때는 빚을 받으려고 2∼3명의 여관종업원들이 극단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이들은 극단을 조금씩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빛 받을 생각은 잊고 극단에 끼여 한패가 되는 수도 있었다.
이러한 형편의 극단이었으니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하루종일 단장 문수일씨와 나운규씨, 오빠, 이 세 사람이 나를 두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그러다 저녁때는 끝내 문씨와 오빠 사이에 칼부림까지 나고 이틈에 나 선생과 나는 잽싸게 서울로 도망쳐 버렸다.
한편 오빠는 극단 측에 붙들려 온몸에 멍이 들도록 실컷 얻어맞고 시달리다 l주일 후에야 겨우 서울로 돌아왔다.
그해 4월말께 춘사는 「스탭」과「캐스트」진을 이끌고 아지랭이가 아른거리는 안암골 (현재 고대가 있는 곳)에서 영화『아리랑』의 촬영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이 안암골엔 민가라곤 초가 10여 채와 기와집이 한채 밖에 없는 첩천산중 이었다.
세트조차 지을 수 없는 때였기 때문에 춘사는 안암골을 중심으로 로케를 하기로 한 것이다.
「스탭」들은 황금정(현 을지로) 에서 전차를 타고 창경원 앞에서 내려 안암골까지 약20리 길을 걸어다녔는데 나만은 언제나 특별대우로 인력거를 태워 주었었다.
막상 제작에 들어가니 돈이 모자라 점심때는 모두들 호떡 한 개로 끼니를 때워야했고 결과적으로 「스탭」캐스트들은 무료봉사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예외로 1백원의 출연료를 주었다. 쌀 한 가마니에 6원하던 시절이니까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거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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