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2)-<적치하의 3개월>(15)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적중 횡단>(3)
서울에 이어 오산에서 두 번째로 총살을 모면한 이정송 여사는 계속 남하의 길을 재촉하여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관문인 낙동강전선에 도착한다. 이때는 이미 적지를 한달 이상이나 헤맨 끝이라 몸과 마음이 인내의 한계점에 달한다. 더 이상 괴뢰여군으로 가장할 수도 없게되고 전선에 가까워 오니까 검문검색도 더 심해진다. 이 여사의 적중횡단 체험 마지막회에는 그녀가 수차의 사선을 넘고 마침내 우군전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직 부부일념의 사랑의 힘 때문이었다는 부부만세 의 기록이 주마등처럼 전개된다.
『문경에서는 아직 국군이 버티고있다는 소문을 듣고 괴산에서 다시 그곳으로 가 봤지요. 여기서도 바로 전일에 격전이 있었지만 국군은 왕 후퇴한 뒤였습니다.

<추억 어린 대전도 적중에>
문경에서 「빨치산」이 국군포로 및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봤어요. 그 중에 장교는 중위가 있어요. 그런데 그 옆을 지나던 한 괴뢰 군 병사가 뛰어나가더니 「야, 너, 나를 알아보겠니?」하고 소리쳐요.
중위는 잠시 살피더니 「야, 너 아니냐」하며 희색이 만면 이예요, 그러자 괴뢰군병사는 대뜸 국군중위를 발로 걷어차면서「이 새끼야 너가 뭐야, 개새끼!」라고 소리쳐요. 이 새끼는 내 중학동창인데 조국을 배반하고 남반부에 도망쳐서 국방 군에 들어간 놈이다.
「용서해 줘. 밥 먹기 위해 군에 들어 간 거야」 중위는 두 손을 모아 빌더군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너 같은 놈은 고향과 동창의 수치다. 여보, 「빨치산」동무, 이놈을 나에게 넘겨주오.」
「좋소!」라고「빨치산」은 응낙하데요.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가를 보여 줄 테다」면서 괴뢰군병사는 중위를 길가의 나무에다 붙들어 매더군요. 그리고는 칼을 꺼내더니「이런 개새끼를 죽이는 데 총알을 쓰기는 아깝다」면서 중위의 바로 면상을 가로 세로로 북 그어요.
「살려줘!」중위의 가냘픈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괴뢰병사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가슴·배·목· 할 것 없이 중위의 몸둥이를 난도질해요.
나는 이때까지 꽤 참혹한 장면을 봐왔지만 이처럼 잔인한 살인은 처음 보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같은 동창인데 저렇게 무참히 죽일 수가 있을까? 동종간의 전쟁은 타민족과의 싸움보다 더 잔인한 것인가?
이북출신인 내 남편도 만약 안면이 있는 적에 잡히면 저렇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더군요.
문경을 떠나 상주로, 그러나 거기도 벌써 적지였읍니다. 소문에 헌병들은 대전에 많이 있다기에 길을 다시 서남으로 돌려 그곳으로 향했지만 대전도 벌써 적 수중에 들어 있습디다. 대전은 우리 부부에게는 아름다운추억의도시죠.

<미 기 오면 미군포로 노출>
3년 전에 남편과 처음 만난 곳도 여기고 신혼 여행 온 곳도 여기였습니다. 그렇게 그립던 도시건만 전쟁에 불타잿더미가 돼있어요. 남아있는 큰 건물이라고는 도청과 도립 병원 뿐이 예요. 도청은 괴뢰군본부로, 도립병원은 미군포로수용소가 돼 있더군요. 병원 옆에 갔을 때, 미 군기가 날아와요. 마침 그때 건물 안에서 괴뢰군은 웃옷을 벗은 미군포로들을 몰고 나오데요. 포로들은 미 군기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휘파람을 불며 야단들이예요.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무슨 상자들을 떨어뜨리니까 포로들이 환성을 올리며 주워요. 그러나 괴뢰병사들은 매질을 하며 모두 뺏더군요. 아마 미군 물자를 뺏으려고 계획적으로 포로들을 미 군기 앞에 노출시켰는가 봐요.
다시 대전에서 옥천으로, 그리고 이원으로…. 서울을 떠난지 벌써 한달 이상이 됐읍니다. 그 고생 중에도 배는 자꾸 불러 이제는 누가 봐도 애기 밴 여자가 틀림없게됐지요. 발은 퉁퉁 붓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터지고 엉켜 신을 벗을 수가 없어요 .옷도 걸례가 다 돼 상거지 골이지요.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는 것은 나 혼자만의 망상일까? 하지만 망부의 집념으로 몽유병자처럼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낙동강 변의 선산지역에 도달했어요. 몸도 무겁고 헤엄도 못쳐 얕은 물을 따라 건너려다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깨어보니「빨치산」에 잡혀 있어요. 거의 만삭의 몸이라 이상 더 괴뢰여군이라 속일수도 없어 이 동네에 사는데 강 건너 친정동네로 가는 중이라고 핑계를 댔죠.
그런데 피란 안가고 이들에게 밥을 해주던 이 동네 노파가 저런 여자 모른다고 해서 탄로가 났어요. 이래서 괴뢰군 정치부에 넘어가 세 번에 걸쳐 모진 심문을 받다가 기절했어요. 한참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누가 맥을 짚고 있어요. 이런데서나를도와줄사람이없을텐데하면서누구냐고 물었더니, 괴뢰군 도라지부대 13연대소속의 군의관이라는 겁니다.
그는 자기처가 6·25직전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면서 나를 퍽 동정해요.
그 전날에 낙동강 변에서 배고픈 김에 날 땅콩을 마구 캐먹어 복통이 심했는데 그 군의관은 다른 약은 없다면서 아편을 조금 주더군요. 그걸 먹으니 배가 편해집데다.

<찬송가 부르던 북괴군의>
그날 밤은 달도 밝고, 왜 그런지 꼭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달을 보며 찬송가를 나지막하게 불렀어요. 그런데 그 군의관도 휘파람으로 따라 불러요.
그 사람이 하늘만큼이나 미더워지더군요. 그래서 집이 대구인데 아기를 거기서 낳게 데려다달라고 애원해서 이들과 동행할 수 있게 됐읍니다. 트럭에 편승하여 가다 폭격을 만나 다시 도보로 전선으로 향했죠. 도라지부대와 동행하는 동안은 도중에서 검문을 받지 않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이들과 섞여 걸었지요. 이렇게 해서 최전선인 다부동까지 갔는데 여기서 다시 나를 심문해요. 최전방이니까 여간첩이 많다는 거예요. 대구 집이 어디냐고 묻기에 남산동1가라고 했지요. 남산동1가가 어디쯤이냐고 다시 묻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요. 어물어물하니까『신명고 여 근처냐』고하기에『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금방 발길질을 하며 간첩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렇게되니까 그 군의관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데요.
그날 새벽이 되니까, 한 장교가 나를 불러내요. 안개가 자욱했읍니다. 나를 보고 똑바로 걸어가라는 거예요. 죽을 각오를 하고 열발 짝쯤 걸어가는데 다발 총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까 고지에서 몇 길이나 되는 개울가에 떨어져 쓰러져 있어요.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을 뿐, 신통하게도 다른 상처는 없었어요. 짙은 안개 때문에 또 살아난 거지요. 또 소리가 요란하고 소총소리까지 들려요.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고 나무를 꺾어 지팡이를 짚고 다시 걷기 시작했죠. 얼마 안가다 웬 할아버지를 만나 대구 길을 물으니 개울물을 쭉 따라 50리쯤 가면 된다는 거예요. 개울옆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수도관 같은 것이 여기저기 묻혀있어요.
그사이를 헤치며, 비틀거리며 걷는데 시체가 하나있어 들여다보니까, 하반신이 날아가고 그 밑에 웅덩이가 파져있어요. 수도관처럼 보인 것은 지뢰입데다. 소름이 끼쳐 길옆 산으로 들어가 거의 기다시피 했어요. 너무도 지쳐 정신이 깜박깜박해요. 이렇게 산길을 얼마쯤 걸었을 때 정지! 하는 소리가 들려요. 보니까 백m전방쯤 총을 겨눈 4명의 괴뢰병사가 서 있더군요.
「또 괴뢰군에 잡혔구나」하며 털썩 주져 앉았어요. 이제 더 도망갈 기력도 없구요. 「여기서 무얼 하고 있어?」 4명이 다가오더니 총을 들이대며 물어요.
「대구로 남편 만나러 가오.」
「거짓말 말아. 간첩이지?」
「아니예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도라지」부대 군의관한테 물어보세요.」얼마 전까지 도라지부대 의무대와 함께 왔었으니까요.

<유언으로 살아난 구사일생>
「도라지」부대라는 말을 듣더니 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저리로 가자」면서 고지위로 데려가데요. 거기서 장교 같은 사람이 「뭐냐」고 물으니까「도라지」부대여자입니다 라고 대답합데다. 「뭐 틀림없나?」저 여자자신의 자백입니다. 「이봐, 너 정말 「도라지」부대에서 왔나?」이번에는 나에게 물어요. 「네, 그렇습니다.」「응, 그래? 즉결처분!」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멍하고 있으니까 네 병사들이 「이리와!」며 큰 바위 앞으로 데려가더군요. 그리고는 총을 겨누는 거예요.
「아! 총살이구나. 이젠 정말 죽는가보다.」두 달 이상이나 이 고생을 했는데 드디어 남편도 못 만나고 죽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산도 하늘도 그리고 추운 겨울 병사들의 얼굴도 모두가 뿌옇게 보이구요. 그대로 눈을 감았읍니다.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남편의 환상에 미소지으며, 총 소리가 나기만 기다렸지요. 이때 잠깐 하면서 아까 그 장교가 유언이나 듣고 총살하자 고 해요.
이제 신분을 속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똑바로 신분을 밝히면, 혹시 여기 있는 자들의 입을 통해 내가 어떻게 죽었는가의 소문이 남편 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마지막 있는 힘을 다 내 소리쳤읍니다.
「나는 사랑하는 남편을 한번이라도 보려고 서울서 여기까지 왔읍니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고 여기서 죽어요. 후회는 없지만 남편 못 만난 것이 슬퍼요. 내 남편은 당신네들 적인 국방군 장교이지만 만약 그이가 당신네들한테 포로가 되거나, 또는 전쟁이 끝나 만날 기회가 된다면 부디 이렇게 전해 주세요. 당신의 아내는 끝까지 당신을 찾아 헤매다가 당신의 아내라는 행복감을 안고 죽어갔다고요….」

<장 소령은 육사 동창생>
여기까지 소리치자 그 장교가 갑자기 내 앞에 뛰어 오더니「남편 이름이 뭐요?」하고 물어요.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헌병소령 장우주」라고 떳떳이 말했지요. 「아니, 정말이오?」장 소령은 내 육사 동창인데하며 그 장교는 어쩔 줄을 몰라해요.』
여기서 이정송 여사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이 여사가 바로 도달한 우군전선에 배치됐던 국군1사단12연대장 김점곤 대령(현 경희대교수·48)의 증언을 들어보면….
『9월 중순께 다부동 일대에서 우리연대는 매일 심한 전투를 하고있었지요. 그런데 한순하 소령의 제2대대에는 우수한 수색대가 있어 적의부연대장을 생포해오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어요. 배 상사를 장으로 한 4명의 수색대인데 괴뢰 군복을 입고 적진에 들어가 적정도 탐지하고 포로도 잡아오는 거지요. 그런데 하루는 한순하 소령한테서 장우주 소령의 부인이란 여인을 잡았다는 전화가 왔어요. 장 소령은 내 후배고 또 그와 한 소령은 동기(3기) 예요. 그러니 그 부인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게 없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장 소령 부인은 초인적인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적중을 돌파해 왔더군요. 나도 놀랐읍니다.』끝으로 부부가 3개월만에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이야기.
『남편과 처음 만난 것은 9윌28일 바로 서울이 수복되던 날 부산에서죠. 남편은 내가 효창공원 형장으로 끌려가더란 소문을 듣고 꼭 죽은 줄만 알았데요. 가슴을 울렁거리며 만나면 서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서 부산 역에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났는데도 웬일인지 그냥 멍! 하고 있었어요. 남편도 다가오더니 빙그레 웃으며 그냥 「어디 아픈데 없어?」라고만 해요. 퍽 극적인 상봉을 생각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싱겁게 됐어요.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의 차이가 이런데 있는가보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