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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식 추석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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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윤석 정치국제부문 기자

매년 추석 연휴가 지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지역에서 직접 들었다는 ‘추석 민심’을 언론에 전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22일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자마자 의원들은 저마다 기자들을 만나, 혹은 전화로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여야가 전하는 민심이 이렇게 달랐다.

 먼저 새누리당.

“여자 대통령이 뚝심 있게 잘한다. 안보에 있어선 더욱 신뢰가 있는 것 같다. 마음먹은 일은 한다고 하더라”(유일호· 서울 송파을), “일관된 대북 정책으로 북한의 버릇을 고치고, 외국에 나가서 외교 활동을 잘하더라. 내치도 강단 있게 잘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김태흠·충남 보령-서천)….

민주당에 대해선 무조건 잘못했다는 얘기들뿐이었다. “잘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기국회가 열렸는데,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 혀를 차시는 분들이 많았다”(경대수· 충북 괴산), “장외투쟁으로 뭘 어떻게 얻겠다는 건지 한심하다는 얘기들을 했다. 굉장히 비판적이더라”(유기준·부산 서구)는 식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전한 민심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냐고들 했다”(이상민·대전 유성), “패션쇼만 하고 아무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 꽉 막힌 대통령 때문에 울화통 터진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김성주·전주 덕진).

조금 온건한 표현이 “대통령 잘한다는 여론도 이제 우려로 바뀌었다”(박범계·대전 서을)는 반응이었다.

 한마디로 내 탓은 하나도 없고 모두 네 탓이란 얘기였다. 여든 야든 자기들이 민심과 어떻게 동떨어져 행동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원들은 찾기 힘들었다. 딱 한 군데 의견이 일치한 대목이 모두들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는 점이었다. “장사도 안 되고, 물건도 안 사 가고. 다들 경제를 살려달라고 했다.”(새누리당 이현재·경기 하남) “민생을 외면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얘기가 많았다.”(민주당 원혜영 의원·경기 부천 오정)

 결국 추석 민심은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적어도 전셋값 폭등에, 실업에, 불경기에, 먹고살기 힘든 판에 적어도 정치권이 추석 민심을 놓고 네 탓을 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추석 민심을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하며, 22일에도 내가 본 민심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식으로 서로 비난의 화살을 겨누었다. 마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고 온 사람들 같았다.

이윤석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