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몰고 온 바람...업계 자체개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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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심각한 불황은 드디어 관련업계에 광범위한 자체개혁의 바람을 몰아왔다. 주요 지표를 통한 불황의 심도와 개혁의 양상, 그리고 그 원인과 기업들의 향방에 관한 전망 등을 간추려보면-.
긴축정책과 함께 연초부터 일부 업계에 번지기 시작한 불황이 하반기 들어 풀리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 자체개혁의 바람이 일고있다.
긴축정책이 불황을 가져온 원인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수 년째 정부의 확대성장 정책아래서 활발한 설비투자와 생산 판매의 신장을 지속해오던 업계에 긴축정책은 분명 커다란 충격이 됐으며 이것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불황이 장기화할 기미가 짙어지자 스스로 대오를 정비, 앞으로 더욱 가중될 시련에서 헤어나 보려는 노력이 일부 재벌급 기업들을 선두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중론은 말할 것 없고 정부당국의 제지표까지도 작금의 불황이 결코 어느 특정업체 또는 업종에 국한된 현상이거나 단순한 계절적 내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하한기를 지나면서 추석경기에 대비, 활기를 띠었을 생산활동이 전반적으로 저조했으며 동시에 출하동향도 부진한 형편이다.
지난 8월 중 산업생산지수가 7월보다 3.4%나 감소한데 이어 9월 중에 다시 0.6%가 감소됐으며 출하지수는 8윌 중 0.7%, 9월 중에 0.2%가 미증, 예년보다 배가「템포」가 둔화됐다.
업종별 동태를 보면 음료품·연초·목재업·제지·고무제품·화학·전기기기·수송용 기기 등이 모두 생산지수면에서 8월에 이어 9월에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불황의 정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섬유산업이 9월 중에 1.3%의 증가를 시현했으나 9월이 이 업계로서는 연중 4∼5개월 밖에 안 되는 성수기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보합과 다름없는 이 정도의 생산지수 증가는 유례없는 불경기로 풀이되고 있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불황의 정도가 소모방·제지·제약·화섬, 그리고 자동차와 「시멘트」 등의 순서로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아뭏든 이런 상황하에서 업계에는 어느새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는 노력 없이는 긴축이 몰고 온 이 불경기 속에 헤어날수 없다는 중론이 대두, 중소기업처럼 경영내부의 개편이 용의치 않은 대기업들까지 하나 둘 자체개혁의 용단을 내리고 있다.
개혁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감원(신규채용중지 포함) 및 기구축소와 경영체제의 개혁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개혁의 구체적인 예를 보면 얼마 전에 전체 임직원을 1계급씩 강등시킨 동양 「시멘트」가 최근에 본사직원 1백여명 중 30명을 감원조치한데 이어 지난주에는 삼성「그룹」의 제일모직이 6명의 상무이사를 평이사로 강등시킨 것을 비롯 10명의 과장을 직위해제, 7명의 부·과장을 대기발령하고 1부6과를 폐지하는 대개혁을 단행했다.
동시에 제일모직은 기구를 종전의 기능적 분류방식에서 제품별로 분권화, 본사의 행정관리 업무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생산·판매업무를 강화, 대구와 경산공장이 별도 조직과 권한으로 책임경영을 구현케 하는데 주안을 둔 경영체제개혁을 단행했다.
비록 제일모직에 국한된 개혁이었지만 삼성「그룹」내 일부기업의 이러한 개혁은 여타 기업에 퍽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있다. 『삼성이 그런 형편인데 우리 사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며 뒤따라 개혁에 나설 계획임을 암시하는 업체들도 많다.
삼양사, 전남방직, 한국「나일론」, 신진, 대한전선 등은 경영조직을 판매위주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최근 산하 기업을 원료기업과 가공기업으로 크게 양분, 통합한 선경「그룹」의 예도 바로 이러한 자체개혁 움직임의 일부로 풀이되고 있는데 지난해에 60명에 달했던 신규채용을 금년에는 포기함으로써 사실상의 감원 효과도 노리고 있다.
「동양」은 말할 것 없고 협회 산하 굵직한 「시멘트」회사에 모두 신규채용계획이 없으며 고려제지(69년 채용 10명), 현대자동차(50명), 신진「그룹」(2백명) 등도 마찬가지다.
한진 「그룹」은 고속「버스」경기 탓에 간신히 채용인원이 종전수준을 유지하게 됐지만 한국화약계에서는 경인「에너지」가 내년 3월부터 가동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절반밖에 안되는 10명 내외를 뽑을 계획이다.
많은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재벌급 기업들의 신규채용 계획이 전무하거나 혹은 축소됐기 때문에 작년엔 일부 달리기까지 했다는 서울대·고대·연세대 등 몇몇 대학 졸업생들의 취직률도 작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는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자가용증차억제와 영업용의 불경기에 업계의 과당경쟁까지 겹쳐 격심한 불황을 겪고있는 자동차업계에서 신진은 1개월 전에 7백명을 대거 감원조치 했으며 현대자동차는 작년의 30%밖에 안되는 판매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우선 종업원 4백명 남짓한 서울정비공장에 능률급제를 도입했다.
한편 수출전문업체의 하나이지만 부평공단 안의 「뉴·코리아」전자가 최근에, 삼호공업은 벌써 7개월 전째 조업을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며 얼마 전 동양「나일론」으로 넘어간 한일「나일론」이나 연세개발로 넘어간 한국모방 등 불황 때문에 아예 전렬이 달라진 업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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