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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도, 초코파이도 못 돌린 한가위…아직은 반쪽 정상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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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 기업 주재원들이 19일 개성공단종합관리센터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뉴시스]

예전엔 추석 때 떡도 돌리고 초코파이도 나눠줬는데 올해는 회사 사정이 나빠 아무것도 못했다. 북한 근로자들도 사정을 아는지 크게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5개월 넘게 쉬는 동안 농사를 지었는지 직원들 얼굴이 많이 까매졌더라.”(개성공단 봉제업체 A사 B사장)

“일감이 부족해 추석 연휴 기간엔 북한 근로자들을 모두 쉬게 했다. 가동 정상화 첫날인 16일에 20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나와 설비를 점검한 뒤 시험용으로 제품을 조금 만들었는데 오래 쉰 탓인지 손놀림이 무뎌진 듯하다. 23일쯤 다시 들어가 본격적인 생산준비에 나설 계획이다.”(의류업체 나인모드 옥성석 사장)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추석 연휴에도 공장 정상화를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남북 합의에 따라 개성공단은 가동 중단 5개월 반 만인 지난 16일 재가동에 들어갔다. 상당수 입주 기업들은 추석 당일(19일) 하루만 쉬었다.
북한이 우리와 달리 추석 당일만 공휴일인 데다 공장 정상화가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추석 연휴 동안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입주기업 주재원 90여 명은 19일 개성공단종합관리센터에 모여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차례가 끝난 뒤엔 윷놀이와 제기차기 같은 민속놀이를 즐겼다.

통일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평균 가동률은 60%대를 기록했다. 입주 기업 123개 가운데 30여 개 업체가 공장을 100% 가동한 반면 20여 개사는 아예 가동하지 않았다. 홍양호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은 “아직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입주기업들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 업체가 추석연휴가 끝난 뒤에는 정상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는 재가동 첫날인 16일 3만1500명이 출근했고, 추석 연휴 기간에도 3만 명 선을 유지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는 연휴가 끝나는 23일 이후에는 4만 명 이상이 출근할 것으로 전망했다. 4월 개성공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 출근 인원은 5만3000여명이었다.

개성공단은 정상화됐지만 입주 기업인들은 “아직 절반의 정상화일 뿐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정상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5개월 넘게 가동이 중단되면서 떨어져 나간 거래처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녹슨 기계를 비롯한 공장 설비도 예전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북한 근로자의 숙련도를 다시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유창근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부회장은 “의류업체를 중심으로 재가동이 시작됐지만 상당수는 시험가동 수준”이라며 “북한 근로자들을 출근시키면서도 주문 받은 물량이 없거나 부족해 걱정하는 기업인이 꽤 된다”고 밝혔다.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태성산업 배해동 회장은 “정상화 이후 한쪽에선 녹슨 기계를 손보고 한쪽에선 물건을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 주문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북한 근로자들이 예전보다 더 긴장하고 더 열심히 일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자부품을 만드는 비케이전자 유병기 대표는 “우리보다 공단 정상화를 더 반가워한다”며 “앞으로 함께 일하기가 예전보다 더 나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자금난을 호소하며 이미 받은 경협 보험금 상환 시기를 늦춰줘야 한다는 기업들도 상당수다. 남북협력기금 수탁기관인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보험금을 받은 업체는 46개사, 총 1485억원이다. 이들은 다음 달 15일까지 받은 보험금을 반환해야 한다. 유창근 부회장은 “돌려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상환 기한을 서너 달이라도 연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수입은 없고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 상황에서 보험금을 돌려주면 경영 정상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기업인은 “정부가 공단 정상화만 홍보하지 정작 입주 업체가 받은 피해가 얼마인지,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보험금을 받지 않은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과 이중수혜 금지 원칙에 따라 기일 내에 반환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염태정·박신홍·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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