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김진표 교육 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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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동안 교육부 수장 자리는 주로 대학 교수들의 몫이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당연하게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경제통관료 출신인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임명이 교육계 안팎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은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월 28일 취임 이후 2개월이 갓 지난 김 부총리를 지난달 31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두 시간에 걸쳐 우리의 교육 실상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교육계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을 방안이 있는지를 물었다. 김 부총리는 "교육문제라는 게 깜짝 놀랄 뉴스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느닷없이 수능시험을 폐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말문을 열었다.

-교육부총리에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이전에 경제부총리로서 지켜봤던 교육부와 직접 경험한 교육부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밖에서 본 교육부는 정부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수요자 중심의 정책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가 돼 두 달을 겪어보니 이해가 갑니다. 교육은 정부의 업무 중 개혁의 성과가 가장 늦게 나타나는 반면 정책을 바꿨을 때의 반발과 저항은 시행 초기에 집중적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소극적일 수 있는 요인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혁신적인 인사를 통해 이런 풍토를 쇄신할 계획은 없습니까.

"상반기에 교육부 안에 인적자원혁신본부가 출범하게 되면 교육부 전체가 바뀝니다. 여기에 맞춘 인사혁신이 불가피합니다. 경험 많은 일선 교사가 연구사나 장학사로 교육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국가의 인적자원 수요를 전망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인적자원혁신본부는 과기부.산자부.노동부.재경부 등과 과감한 인사교류를 하고 각계의 민간전문가를 초빙해 구성할 계획입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교육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갈 복안은 섰습니까.

"교육의 본질은 분권과 자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부에서 좋은 계획을 만들어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교육현장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도 교육감에게 다 넘겨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교육감은 학교에, 교장은 교사에게 권한을 넘겨주라고 부탁했습니다. 바람직한 교육정책은 공공성의 원칙 위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쟁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 구조개혁에 큰 관심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제대로 해낼 자신이 있나요.

"대학 구조개혁은 올해 교육부의 핵심 과제입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늦었습니다. 실은 5년 전쯤에 시작했어야 할 사안이지요. 대학 개혁의 목표는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선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특성화된 대학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을 통폐합하는 것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단위대학별로 스스로 없애야 할 학과는 과감히 없애고 키워야 할 분야는 키워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른 대학과의 학과 간 '빅딜'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경쟁력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대학 구조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퇴출이 원활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프로그램이 없지 않습니까.

"공립과 사립을 나눠서 봐야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대학이 경쟁력 없는 학과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특성화를 하겠다면서 수요가 적은 학과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경우 돈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반면 사립에 대해 강제로 법을 만들어 하면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겁니다. 수요자의 선택에 의해 대학이 따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이 오지 않으면 문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대학의 경쟁력 지표를 공개해야 합니다. 학과별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교수 1인당 학생수 등 기본적인 교육여건은 올해부터 공개됩니다."

-교육부가 도입하려는 교사평가제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많은데 그대로 밀고 나갈 겁니까.

"교사평가제는 많은 교사가 큰 거부반응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가 노하우도 있어야 하고 평가에 참여하는 동료 교사들도 훈련이 돼야 합니다. 우선 올해 시범실시하면서 교원단체와 토론을 통해 의견차이를 좁힌 뒤 단계적으로 확대 운영할 방침입니다. 일단 능력개발형 평가체제로 전환해 학생과 학부모까지 참여하는 다면평가를 실시하겠습니다. 평가 대상도 교장까지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평가 결과는 본인에게 통보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연수를 통해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능력개발형 평가는 교수 능력이나 전문성이 탁월한 교사를 우대하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가 학생들의 과목별 평균성적을 주와 국가 전체의 평균치와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교사들의 학력.경력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학부모에게도 이런 정보를 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학교 경영 내용은 가급적 많이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신뢰를 높여 가야죠. 다만 학교 정보 공개에는 몇 가지 선행조치가 필요합니다. 우선 교사평가제를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로 모든 교육문제의 근원인 대학입시에 대한 과열.집중 현상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공모형 교장초빙제의 도입도 선행조건입니다. 이런 것이 전제되지 않고 학교 정보를 공개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에 주 5일제에 따른 토요휴업제를 실시했지만 학교와 사회 전반의 준비 부족으로 학생들이 우왕좌왕해 보기가 딱했는데요.

"학교나 교사가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모으면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겁니다. 이와 관련해 학교에 도서관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점검하려고 합니다. 정보화 시설을 갖춘 도서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제도 도입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부 고교의 반강제적인 자율학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것입니다."

-고질화된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언론에 보도된 일진회는 초.중학생의 문제인 만큼 학교에서 대화와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문제를 해결한 학교의 모범사례를 발굴, 가산점을 주는 시스템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대처한다면 중학교 수준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은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일부 고교생 폭력집단의 경우 사회폭력 세력과 연계된 경우가 있어 교사의 힘으로 역부족인 만큼 경찰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과 맞물려 국사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국사 교육을 어떻게 강화해 나갈 생각인지요.

"역사를 사회과목에서 분리하고 필수과목으로 해달라, 수능을 포함한 모든 국가시험에 넣으라는 등의 요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선택형 수능에서 국사만 필수과목으로 할 수는 없지요. 문제는 고1 때 필수로 배우는 국사에 근현대사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고1 국사에 근현대사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사 수업시간 수를 늘리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해 우선적으로 지도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올해 고1부터 내신이 상대평가로 바뀌고 수능 비중이 줄어들면서 특목고 등 우수 학생이 많은 학교 학생들이 불리해졌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려운 과제입니다. 대학 총장들을 만나면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의 성적이 높은데 학교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고교등급제의 경우 평준화 시스템 아래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배정을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외에는 대학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도록 권한을 주려고 합니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면 수시모집 등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3불 정책은 일종의 규제입니다. 교육을 개혁하러 왔는데 규제해서야 되겠습니까.

"(웃음)본고사 부활은 대학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시험문제 한 번만 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전 국민을 하나의 줄로 세우는 겁니다. 대학이 책임감을 가지고 현재의 교육여건을 받아들이면서 좀 더 좋은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2007년 도입되는 독서이력철이 하나의 대안이 될 겁니다. 다양한 선발방법을 통해 학생들을 다양한 줄로 세워야 합니다."

-학생 선발이나 교육과정 운영 등에 사립학교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사립학교를 묶어 놓을 생각입니까.

"고교의 45%가 사립학교입니다. 이처럼 사학 의존도가 놓은 상황에서 사립학교에 학생 선발권이나 교육과정 운영권, 등록금 책정권 등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면 평준화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평준화 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고교 체제의 다양화.특성화 및 자율학교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수한 여성 고급 인력이 사장되고 있는데 이를 계속 방치해서야 되겠습니까.

"40~50대 유휴 여성인력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희망자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교육시킨 뒤 자격증을 부여하고 유아.초등교육 보조교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조만간 시범운영할 예정입니다."

만난 사람 = 이하경 정책사회부장
정리=김남중.하현옥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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