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은 아니라지만 … 다시 고개 드는 증세 논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증세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여야 3자회담에서 “국민 공감대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박 대통령이 증세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세 불가’란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원론적인 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기재부는 그간 박 대통령의 지침대로 증세 없이 135조원의 공약 재원을 마련하는 작업을 해왔다. 135조원 가운데 84조원은 세출 구조조정으로 확보하고 48조원은 세입 확충을 통해 마련한 뒤 나머지 3조원은 세외수입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워 박 대통령에게 보고도 마쳤다.

 하지만 ‘부자증세’가 당론인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선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세입 규모 내에서 국가예산을 정말 알뜰하게 쓰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다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서도 “재정 여건이 어려우니 복지 지출이나 공약 우선순위 조절 등을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정희수 의원), “증세 없이 조세 감면만 하면 농어촌이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줄어들어 지방이 무척 어렵게 된다”(강석호 제4정조위원장)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의 언급이 증세불가피론자들을 자극한 셈이다.

 사실 기재부가 ‘증세는 절대 없다’고 장담할 만큼 상황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기재부는 세출을 구조조정해서 84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SOC 예산 감축이 어려워지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영·유아 보육비 가운데 국고 보조비를 높여 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도 마냥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축인 세입 확충안에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세금이 덜 걷히면서 상반기에만 46조2000억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현 부총리는 “하반기에 성장률이 예상대로 3% 수준으로 증가하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연간으로 7조~8조원의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일부를 포기하든지 돈을 더 걷든지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 새누리당 증세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기재부나 새누리당이나 공식적으론 ‘증세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증세는 최후의 카드’라는 발언 정도다.

 현 부총리는 “(증세에 앞서) 세금 안 내는 사람부터 하는 게 조세 형평에도 맞고 우선순위”라며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스케줄대로 하면 (세수 확보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통인 이한구 전 원내대표도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감면 축소와 같은 기존의 대책들을 최선을 다해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며 “증세는 마지막에 생각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증세는 여권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카드임을 보여준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기초연금 같은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당장 1~2년을 볼 게 아니라 그 이후를 감안해야 하는 만큼 증세를 화두로 던지고 논쟁을 거쳐 풀어가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며 “똑똑해진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생각하고 증세 논쟁을 우회해서 편법으로 풀어가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연봉 3450만원 이상부터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소득공제 축소=사실상 증세’임을 부인하다 역풍이 불었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말을 받아 부자증세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가계 소득은 2% 남짓 증가했지만 대기업은 8%대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며 “대기업에 자금이 몰리고 가계의 돈줄은 마르는 상황에서 이명박정부가 감세해준 부분을 다시 되돌려놓지 않으면 해법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부자 감세를 철회하지 않으면 (세수 확보를 위해 마련한) 세제개편안을 올해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여권을 압박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