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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나룻배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동물은 어떤 경우에 놀라고 어떤 경우에 발작하는지?
해결하지 못한 인간문제도 허다한 이 세상에 우공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번 일은 분명히 우공이 저지른 것은 아니다. 나룻배에 실린 우공은 목사님 저녁 진지 상에 놓인「위스키」격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사님 진지 상에 놓인「위스키」라 할지라도 인간 사회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
최후의 만찬에「예수」도 포도주를 드셨고 「카톨릭」성당 아침 「미사」제대 위에는 포도주가 있는 법이다. 소양호 나룻배에 우공이 올라탔다는 것은 조금도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인우동선의 훈련이 없었을 뿐이다.
용변이 마려우면 50전 벌금을 물면 되지 않느냐고 취중에, 일부러 명동 파출소를 찾아가던 시인은 지금 미주에 있다.
그 곳에서 명동 파출소는 꽤 멀 것이다.
일제시대에 쌓였던 묘한 반항심이라고 친구들은 웃어 넘겼지만, 우공에게는 왜정시대라고 따로 없었다.
우공에게는 영원히『인정』시대가 계속될 것이다. 우공은 언제나 어디서나 제멋대로 배설해 왔다. 우공은 인간이 다스려야할 문제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들은 인간 주변에 있는 많은 동물을 더 연구하고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하루 수백 마리의 우공이 공식·비공식으로 죽어 간다. 앞으로 우공의 임종 전에 10분 만 이라도 우공이 어떤 경우에 놀라며 어떤 경우에 발작하는지 시험해 보고, 그런 연구결과가 우리들 생활 속에 실용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동물연구라는 것은 인간자체를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모두가「너」와「나」의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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