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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가을이 익은 산청단풍 그 시심의 과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수풀 속의 새여
너희들의 노래가
단풍드는 숲을 마라 하늘거린다.
새여, 서두르라!

<헤세의. 가을에서>

<날씨 좋아야 색깔 고와져>
11월은 단풍의 계절이다. 11월이 되면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아래서 초록의 싱싱함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붉게 물든다. 아주 고운 노란·빨간 옷을 입은 수목들이 앞을 다투어 제각기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은 온통 불을 질러놓은 것 같다. 맑고 깨끗하게 갠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불의 제전은 보는 이들의 세속에 젖은 가슴을 깨끗이 씻어 준다.
가을이 익어갈수록 단풍은 더욱 빛을 바란다. 황금 물결이 넘실거리던 들판이 그의 풍요를 조용히 거두고 공허와 우수를 나을 때 단풍은 제 철을 만난다.
단풍이 재대로 생기려면 가을 날씨가 좋아야 한다. 즉 낮에는 섭씨 20도 이상이 되어서 따뜻해야 하고, 밤에는 반대로 섭씨 5도 이하로 대기의 온도가 떨어져야 한다.
주야온도의 격차가 심해지면 입에서 광합성 작용에 의해 생성된 동화산물의 이전이 불가능해진다. 자연 잎 속에는 ??분이 과잉 축적 되게 된다. 시간이 경과하면 축적된 과잉당분은 「안토치안」이라는 색소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단풍의 색깔을 나타낸다. 이 색소는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빨간색, 노란색, 황녹색 등 각가지 색깔로 비친다.

<초록빛은 탄소동화 작용서>
원래 잎이 초록빛깔을 띠는 것은 엽록소에 의한다. 태양열에 의한 탄소동화작용이 왕성해지면 잎 속에는 엽록소가 많아져서 더욱 진한 초록빛깔을 띠게된다. 단풍이 되는 것은 잎 속에 들어있는 엽록소가 기온 차에 의해서 생성된 「안토치안」에 의해 점점 대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도 오랫동안 있어 주지는 않는다. 발산과 ??영 뒤에는 ??낙의 서글픔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순응하는 자연의 법인 것이다. 타오르는 정열과 붉은 웃음이 어느덧 한숨 속에 지기 시작한다. 계절의 흐름과 함께 화??한 제전은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점점 빛을 잃게 된다.
봄은 하늘의 뜻이 자연에 순응하는 계절이요, 가을은 하늘의 뜻이 변전하는 계절이다. 풍성한 결실이 앞으로 다가올 깊은 동면으로 오히려 쓸쓸함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숱한 고통과 비애를 통해서 얻어진 수확 앞에서 경건히 머리를 숙이게 되고 이젠 종적조차 알 수 없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긴 사연들을 쓰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수분부족으로 낙엽 재촉>
번거로운 도회 생활에 시달린 사람들도 가을과 더불어 단풍이 곱게 물들면 사랑과 믿음의 우산을 활짝 펴들고 인간의 따스한 정을 그리워한다. 사람들은 풍요가 충만한 결실의 계절이 좀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면서 잎에 수분이 결핍하게 되면 엽병과 잎줄기 사이에 이층이 형성된다. 수분이 없어 목이 마른 나뭇잎들은 소슬한 바람이 선뜻 불어오기만 해도 금방 이층에서 떨어져 나온다. 즉 낙엽이 되는 것이다.
단풍이 든다 든지, 낙엽이 되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는 간단한 것이다.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 이 법대로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본다. 시인들은 가슴속 깊이 시심의 파문을 느끼고 고뇌한다. 소음과 먼지 속에서 시달림을 받던 도시인들은 아름다운 풍치를 감상하며 피로에 젖은 가슴을 달랜다.

<생명 거두는 반성의 계절>
어떻든 가을은 느낌의 계절에는 틀림없다. 역시 가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외향적인 것보다는 내향적임 사색과 반성을 재촉하는 계절이다.
황량한 공허가 깔린 들판이나 화사한 단풍으로 타오르는 산이나 모두 다시 찾아올 생명의 약동을 암시한다. 비록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처량하고 적막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밝고 생기에 찬 생명력을 약속한다.
나뭇잎이 흩날리고 수목들이 화려한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를 들어낸다고 해서 불안스레 의지할 곳 없는 벌판을 방황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정체나 휴지의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의 비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젠 메마른 감정을 정리하고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릴케」의 기도에 귀를 귀 울이기로 하자.
마지막 열매들이 탐지게 살이 찌도록 분부해 주옵 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적인 날을 베풀어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마련해 주옵 시고 풍성한 포도주에 미를 돋우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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