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교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내각에는 버젓한 문부대신이 있고 문교성도 있다. 그러나 국민학교부터 박사학위과정에 이르는 교육에 관한 삼라만상을 이 문부대신이나 문부성이 다 감독하고 다스리지는 않는다. 문교부의 책임은 엄격하게 의무교육에만 국한되어 있다. 의무교육이라고 하면 실상 그 내용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무료교육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기 쉽다. 물론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마구 돈을 내지 않고 15세까지 그저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수업료가 없는 것은 물론, 점심까지 공짜로 먹여준다.
그 나라는 원래가 「민」의 콧대가 센 고장이어서 사립학교가 많다. 뿐만아니라 공립보다 사립학교 쪽이 여러모로 더 우수하다는 점이 특히 우리 사정과는 다르다. 그 중 어느 유명한 학교는 설립이래 약 5백년 동안에 근 30명에 달하는 나라의 재상(총리대신)을 배출한 관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학교들과 문교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저마다의 식견과 전통과 설립목적과 대학입시 준비의 필요성이 좌우한다.
문교부가 좀 걱정이 되어서 학과지도나 교과과정 또는 교수법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같은 학교에 알려주고 싶으면 「서제스천」(suggestion)이란 겸손한 표제를 붙여서 참고해 달라고 책자를 돌린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지도감독」이니 「통첩」이니 하는 따위는 생각조차 못한다.
그런 사립학교를 「인디펜던트·스쿨」이라고 하고, 교장회의라는 데서 저희들끼리 갖가지 정책을 세우고 보조를 맞추어 간다. 문교부로서는 돈을 주지 않으니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못되고, 돈도 받지 않는 터에 감독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네들의 야릇한 버릇이다.
그 나라의 풍습과 우리 풍습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나라에서 돈을 주고도 문교부는 되도록 학교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중에도 특히 대학은 그렇다. 그 나라 대학은 거의 전적으로 국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교부는 대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러 대학의 총장들이 의회 안에다 대학보조금 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해서 대학운영에 필요한 돈을 문교대신이 아니라 재무대신한테서 직접 타다가 나누어 쓴다.
참 이상한 나라이고 이상한 문교부이다. 그러나 재미있지 않은가. 그 나라는 영국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보조를 한다 못한다, 사립학교 공납금을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올려 받도록 허가한다 못한다, 떠들썩한 이때, 우리도 한번 우러러볼 당국과 사학과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