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영변 원자로 다시 가동 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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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영변의 5㎿(메가와트)급 가스흑연 원자로의 복구작업을 끝내고 재가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가 11일(현지시간) 밝혔다.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는 지난달 31일 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영변 원자로 부근의 터빈 건물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닉 한센 연구원과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은 해당 사진을 담은 보고서에서 “원자로 주변 건물에서 피어오른 연기의 색깔과 양으로 보아 북한이 이미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거나 가동 준비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만 연기가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어 본격 가동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자로가 재가동되면 일정기간이 지난 뒤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보고서는 또 “영변 원자로의 경우 연간 6㎏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라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경우 1~2년 안에 최소 2개에서 최대 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인 2007년 북핵 6자회담에서의 2·13 합의에 따라 영변의 원자로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냉각탑을 폭파했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켜왔으며 지난 4월에는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폐쇄됐던 영변 원자로가 재가동되는 데 최소한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분석해왔으나 그 시기가 앞당겨진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게 사실일 경우 6년 만에 합의를 깬 것”이라며 “그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막기 위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4명(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또 “시리아 문제 등에 집중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로선 핵 포기 의사가 없는 나라를 상대로 새로운 제안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한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에 나섰다는 소식은 미국·북한 관계에 더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1기 때 북한과 대화에 나섰으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위협 등으로 반응하자 2기 행정부 들어선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 한 대화를 위한 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38노스’의 발표와 관련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하얀 연기는) 인공위성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므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며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의 핵 관련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측은 정보기관의 활동과 관련된 일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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