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잡스 사진 떼버려라 … 애플 '팔로어' 전락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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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상하이의 애플 스토어 앞을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가고 있다. 애플은 이날 미국 본사에서 아이폰 5S와 5C를 공개했다. [상하이 로이터=뉴스1]

“잡스의 영혼이 새 아이폰과 함께 애플을 빠져나갔다.”(USA투데이), “애플 신제품은 시장 선도자에서 모방자로 변신했다.”(블룸버그)

 애플의 창업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약 2년. 잡스의 카리스마가 떠난 자리는 후임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실리주의가 메우고 있다. 하지만 잡스의 흔적이 생각보다 일찍 지워지면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애플의 빛이 바래는 분위기다. 애플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야심 차게 공개한 새 스마트폰 ‘아이폰5S’(고가형)와 ‘아이폰5C’(저가형)에 대한 주요 외신의 평가가 그렇다. 새롭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라인업을 들고나온 데다, 애매하게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창조성 없다” 쿡 CEO 리더십 뭇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11일 온라인판에 더글러스 매킨타이어 애널리스트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애플 본사의 벽에서 잡스의 사진을 떼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며 실망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매킨타이어는 “이번 제품은 기존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다”며 “이는 잡스가 남긴 제품 개발 계획이 소진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역시 “애플이 경쟁이 심해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방자로 변신했다”며 “지난해 선보인 아이폰5를 다양한 색깔의 플라스틱 케이스로 재포장했다”고 평가절하했다. 다른 언론도 애플이 중국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보인 ‘5C’가 싼 가격이 아니란 점을 부각하며 새로운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월가 투자자의 반응도 싸늘했다. 10일 2% 정도 하락한 애플 주가는 신제품에 대한 반응이 본격적으로 나온 11일 5%나 급락하면서 이틀 새 시가총액 350억 달러가량이 줄었다. 주가는 467.71달러로 1년 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비밀주의 깨지며 낌짝효과 사라져

투자의견 역시 덩달아 하향조정됐다. UBS는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내리고, 목표 주가도 주당 560달러에서 520달러로 낮췄다. 크레디트스위스·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등도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내렸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보고서를 통해 “애매한 가격으로 두 종류의 신제품을 동시에 출시해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은 2002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모두 종전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장파괴형’ 혁신 제품들이다. 이후 애플은 앱스토어로 연결되는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잡스 사망 이후에는 예전의 위상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삼성에 추월당한 지 오래고, 태블릿PC 세계시장 점유율도 다른 경쟁업체와의 간극이 계속 좁혀지고 있다. 차세대 혁신 제품으로 주목받는 손목시계 형태의 신형 단말기인 ‘스마트 워치’ 출시도 늦어지고 있다. 그사이 삼성·소니·구글·퀄컴 등 후발주자들이 먼저 관련 제품을 공개했다.

 이처럼 애플의 창조성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쿡 CEO의 리더십도 뭇매를 맞고 있다. 대개 전 CEO인 잡스와 비교하며 “존재감이 없다”고 비판한다. 쿡은 체계적이고 꼼꼼한 스타일의 CEO다.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지고, 데이터에 근거해 주요 경영의사를 결정한다. 다혈질에 독단적이었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열정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잡스와는 차이가 있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새 아이폰 발표장에서는 이른바 ‘깜짝쇼’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쿡이 잡스와 애플의 전통을 계승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사실 애플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의 ‘백미’는 철저한 비밀주의다. 잡스 시절 새 제품에 대한 ‘핵심 정보’는 막판까지 기밀보안이 이뤄졌고, 덕분에 제품이 공개될 때 ‘깜짝 효과’는 극대화됐다.

“새 모델 기능은 훌륭” 반론도

 하지만 이번 발표에선 애플의 비밀주의가 완전히 무너졌다. 실제로 저가형 아이폰이 출시되고, 지문 인식 기능이 탑재되며, 다양한 색상의 모델이 나올 것이라는 그동안의 루머는 사실로 드러났다. 잡스 시절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미국의 유명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거인 로버트 스코블은 “쿡은 미래 혁신에 관심이 없어 보이며, 숲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인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의 사내 분위기도 심상찮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쿡이 애플 CEO에 오른 이후 애플 내에서 많은 핵심 인력들이 이미 빠져나갔거나 이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경영 문화에 불만이 쌓인 결과다. 사실 이번 신제품 발표를 뜯어보면 애플이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아이폰5S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는 세계 최초의 64비트 칩인 신형 A7 프로세서가 탑재됐다. A7의 탑재로 CPU 성능은 아이폰5에 비해 5배 이상 빨라졌다. 여기에 M7이라는 모션코어프로세서도 함께 들어갔다. 걷거나 뛰거나 하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빠르게 판단하는 프로세서다.

마법은 끝나 … 성능 개선에 만족해야

 조지타운대 로널드 굿스타인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새 모델의 기능은 훌륭하다”며 “다만 지난 15년간 혁신에 성공해 온 브랜드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IT전문 매체 시넷의 찰스 쿠퍼 기자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마법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속도를 높이고, 카메라·배터리 등의 기능을 개선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슬럼프에 빠진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진시장·신흥시장 할 것 없이 스마트폰 보급률 높아지면서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매출의 절반을 아이폰에 의존하는 애플로서는 기존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커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까진 애플의 미래를 속단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 급락한 노키아나 신제품을 못 내놔 10년 이상 내리막길을 걸어온 소니와 달리 탄탄한 기술력에 ‘실탄(2분기 현재 현금 보유액 1466억 달러)’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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