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살육이 판치던 식인종의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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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찬삼 여행기|피지군도에서 제2신>
서울 「수바」시는 아열대의 눈부신 햇볕아래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남태평양제도의 가지가지식물이 있다는 대 식물원을 찾으니 유독 인상적인 것은 우뚝 서 있는 「반야」라는 인도산거목이었다. 이 나무는 어찌나 큰지 그 그늘아래서 족히 몇 백명의 사람이 쉴 수 있을 만큼 가지가 울창하게 널리 퍼져있다. 이런 나무 아래서 세계평화회의랄까, 「플라토닉」한 「심포지엄」을 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이 식물원을 보고는「피지」박물관을 찾았다. 여기엔 원주민들의 민속품이 많은데 먼저 띄는 것은 전세기에 쓰였다는 「커누」의 노였다. 이것은 큰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길이 5, 6m나 되는데 이렇게 큰 노로 배를 저었던 이들 조상은 아마도 「타이탄」과 같은 거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고많은 민속물 가운데에서도 유독 눈을 끄는 것은 20세기초까지도 식인들이 쌌다는 목자르는 돌칼이며, 사람 고기를 얹던 나무접시였다. 이 접시는 지름이 약 60m인데 이들이 사람을 잡으면 생선처럼 토막을 내어 먹음직스럽게 조리해서는 이 접시에 담았다는 설명이 씌어 있다.
이 접시의 표면이 반질반질 닳은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사람의 목숨이 이 나무접시의 제물로. 바쳐졌을 것이다. 물끄러미 보느라니 소름이 쫙 끼쳐졌다. 하긴 은 쟁반에 얹힌 사모하는 「요한」의 갈린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차디찬 입술에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요부 「살로메」가 더 전율을 느끼케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무접시는 실제로 식인들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쓰던 것이라고 하니 사람고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식인종의 자손인 원주민 관원이 친절히 식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풍습은 자연의 맹위에 대한 위무, 씨족의 번식과 식량의 풍족, 전승에 대한 기원, 모는 싸움에서 상대편을 잡아먹으면 자기 힘이 배가된다는 신념들,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교통이 불편한 이 군도에서는 닭이며 돼지 따위의 육류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양을 춰하기 위하여 사람고기를 먹게 된 까닭도 있지 않을까 한다.
「피지」군도의 원주민은 「멜라데시아」 족과 「폴리네시아」족과의 혼혈종이지만, 거의 「폴리네시아」계를 닮았는지 살갗이 검고 묜가 납작하고 머리카락이 곱실곱실하고 입술이 두터운 원시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눈이 유독 날카로와 살기가 든다. 이렇게 잔인하게 생겨서 사람고기를 먹었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태평양 제도 중에서는 가장 모진 인종이라고 한다
식인의 대장은 부족 사이의 싸움에서 잡아온 포로를 비롯한. 죄인, 노예 패전한 씨족의 잔존자, 어린이, 과부 모는 의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하는데 잡아죽일 사람이 많으면 우리 속에 가두어두고 차례로 끄집어내어 신직의 손으로 죽였다고 한다. 한편 살인행위가 어찌나 성한지 혈육 중에서도 쓸모 없는 늙은이, 또는 앓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이든지 아니면 산채로 땅속에 묻었다고 한다.
식인종들은 적을 증오하고 복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긴 돼지고기」라는 이름으로 사람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언젠가 어떤 생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고기는 그 옛날엔 역한 냄새 때문에 야수들까지도 만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피지」 군도의 원주민에게는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들은 타고나면서 사람무기가 고급요리이었던 모양이다.
박물관에 있는 식인목기를 물끄러미 보느라니 사람고기를 맛있게 먹고있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금 이들은 기독교의 신앙으로 식인의 풍습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렇다할 현대교육을 못 받아 개화하지 못했으니 아직도 맛좋은 사람 고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친절히 실명해주는 그 관원의 생김새가 무서운 것으로 보아 혹 발작이라도 하여 나를 사로잡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 없지 않았다. 약 90년 전의 일이지만, 미국감리교에서 보내온 선교사가 서울 「수바」시 교회에서「그리스도」교를 포교하다가 또한 식인종에 사로잡혀 그들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 그 선교사는 자기 살을 맛있게 먹을 무지한 식인종들을 위하여 무저항주의의 기독교정신으로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자비의 기도를 신에게 드렸는지는 모르나 그의 희생된 자리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전도회관이 세워져 있다. 고귀한 희생으로 이렇게 지금은 종교로 정복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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