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 전쟁 1년 된 날 … 중국 "이중스파이 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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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 당국, 주젠룽(朱建榮·56·사진) 정보 유출 혐의로 구속키로’.

 11일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린 기사 제목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일본 정부가 국유화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가뜩이나 악화일로에 있는 중·일 관계에 새로운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스파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건의 주인공 주는 중국 상하이의 화둥(華東)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 건너가 27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학자다. 도쿄대 강사를 거쳐 도요가쿠엔(東洋學園)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중국에 관련된 사건이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일본의 각종 미디어에 단골 출연하는 논객으로 일본 국민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의 유력 신문에도 활발하게 칼럼을 기고해 왔다. 부인은 일본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17일 고향인 상하이에 갔다 돌연 연락 두절이 됐다. 같은 달 22일 귀국 예정이던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예약돼 있던 각종 강연과 TV 출연도 펑크가 났다. 50일 넘게 소식이 끊기자 돌기 시작한 소문이 주의 ‘이중스파이’ 발각설이다. 그리고 소문은 사실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주는 원래 일본 내에서 중국을 편드는 발언을 많이 해왔다.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 충돌사건 때는 NHK에 출연해 “중국 어선이 고의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충돌한 게 아니라 그물이 바닥 밑바닥에 걸려 어선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 대해선 “군 출동 중 일어난 발포사건에 불과하며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일본 내 우익세력들은 “주는 일본 내 중국 대변인”이라 몰아붙이기도 했다. 실제 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직전 휴대전화로 주일 중국대사관 관계자와 발언 내용과 수위를 상의하는 모습이 목격된 적도 있다.

 그는 일본 정계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2007년 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총리는 중국 방문을 앞두고 주를 총리 관저로 불러 조언을 구한 일도 있었다. 중국으로선 일본 내의 믿음직한 파이프 역할로 주를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주가 일본 내 유력 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 당국의 역공작에 넘어갔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산케이신문은 “지난해까지 일본 내 중국인 단체 대표를 맡아오면서 일본의 정부기관으로부터 자금원조를 받는 대가로 중국의 정치·군사 관련 기밀정보를 수집해 제공한 혐의가 있다”고 전했다. 주가 일본에서 출판한 책자에 중국이 발표하지 않은 정보들이 대거 실리게 된 경위와 일본 당국 인사들과의 잦은 교류도 집중적으로 추궁당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은 중국 공산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에 있는 중국인 학자들에게 ‘일본 정부 당국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도 있다”고 전했다.

 교도(共同)통신은 “올 들어 주가 중국 내에서 중국군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특히 해군 관련 정보를 자세히 수집하고 다닌다는 첩보가 중국 당국에 포착됐다”며 “하지만 주를 일단 연금한 뒤 재교육해 석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11일 “중국이 센카쿠 열도 국유화 1년이 되는 날에 맞춰 주의 스파이 혐의 뉴스를 흘린 것에 주목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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