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하는 캐릭터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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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캐릭터 마케팅이 진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공주 대관식’을 하고, 아웃도어 브랜드 캐릭터가 직접 낚시여행을 가거나 디저트 카페 캐릭터 인형이 패션 브랜드의 화보 모델로 나서는 등 이야기 속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엄마, 포크는 왼쪽에 놓는 거지요.” “공주는 용기 있고 친절해요.”

 수원 영통에 사는 주부 박상화(32)씨는 요즘 ‘공주 매너’를 지키는 세 살 난 딸 홍수인양이 마냥 신기하다. 딸의 변화는 지난달 1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프린세스 아카데미’에 참석한 뒤부터다. 백설공주·신데렐라 등 공주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디즈니가 롯데백화점과 함께 주최한 행사다. 드레스를 입고 엄마와 함께 참석한 3~10세 꼬마 숙녀들은 테이블 매너, 왈츠, 발성 연습 등 약 4시간의 무료 교육을 마치고 얼굴 사진이 들어간 졸업장까지 받았다. 현장에선 “나는 프린세스입니다. 겁이 날 때도 있지만 용기를 낼 줄도 압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걸 믿습니다…”라는 디즈니의 캠페인 영상 내레이션이 흘렀다. 박씨는 “딸이 ‘미녀와 야수’의 벨처럼, 수동적으로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용기 있는 공주로 컸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설공주나 인어공주 같은 특정 캐릭터가 아니라 공주 컨셉트를 홍보하는 디즈니의 ‘공주 마케팅’은 캐릭터를 이용한 스토리마케팅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들은 각기 그 자체로 강력한 상품이다. 검은 곱슬 단발머리의 백설공주,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신데렐라, 긴 빨간 머리 인어공주…. 동화 속 공주가 정형화된 모습으로 바로 떠오를 정도다. 디즈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개별 캐릭터에서 그치지 않고 ‘디즈니 공주=용기 있고 배려심 강하고 내면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공주 캐릭터들의 통합 브랜드인 ‘디즈니 프린세스’ 자체를 제3의 캐릭터로 만든 것이다. 공식적으로 디즈니 프린세스가 되기 위해서는 심사를 받아야 하고 그 기준은 용기와 우정 등이라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개봉한 ‘주먹왕 랄프’의 바넬로피 공주 등은 심사에서 탈락했다.

 탄탄한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도 연다. 올 5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에서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주인공 메리다가 런던올림픽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인 개비 더글러스 등 7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식 디즈니 프린세스에 오르는 대관식을 했다. 디즈니 관계자는 “이런 스토리 마케팅을 통해 어린 소녀뿐 아니라 ‘엄마와 딸’을 포함한 성인여성까지 고객이 된다”고 말했다. 진취적인 이미지를 덧입혀 “공주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국내에서도 캐릭터 마케팅에 소설 같은 이야기 구조를 접목한 캐릭터 스토리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뽀로로·자두 등 인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광고나 포장 등에 활용하는 데 그쳤던 것에서 한 발 나아간 것이다. 코오롱스포츠는 최근 ‘헤스티아’ 다운(오리·거위털)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캐릭터 ‘헤스티아 크루’를 내놓았다. 헤스티아에서 이름을 딴 헤더·수지·티제이·아더 등 4명의 가상인물이다. 페이퍼 토이 업체 ‘모모트’와 합작해 종이를 접어 만드는 장난감 인형 형태로 만들었다. 기존 캐릭터들처럼 제품 로고나 카탈로그에 사용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헤더는 캠핑과 서핑·음악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수지는 패션과 여행·맛집에 관심 많은 작가지망생 블로거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성격을 부여한 다음 이들의 아웃도어 활동을 블로그·페이스북 등을 통해 실존하는 인물처럼 올린다. 이들의 모험을 담은 웹툰도 곧 연재한다. 광고는 물론 패션쇼나 극지 탐험 활동에도 동행한다.

마케팅팀 박승호 부장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일상과 아웃도어 라이프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에 담아 부담 없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스토리를 확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디저트 카페 ‘망고식스’의 고릴라 캐릭터 ‘망식이’는 지난해 여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름도 없었다. 당시 신제품이었던 바닐라 셰이크를 차별화하기 위해 컵에 붙인 고릴라 스티커에 불과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카페 이름을 줄여 ‘망식이’라고 부르는 등 인기를 모으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망식이 인형이 제작됐고 드라마 ‘7급 공무원’에서는 주인공의 집들이 선물로, ‘여왕의 교실’에선 아역 배우가 아끼는 인형으로 등장했다. 현재 방영 중인 ‘투윅스’에선 주인공이 소중하게 여기는 인형으로 여자고릴라 ‘망순이’가 나온다. 망식이는 의류브랜드 탐쥴, 신발 브랜드 타이그라의 모델로 화보도 찍었다. 웹툰 ‘미스터 망식이’, 블로그 ‘망식이의 대모험’ 등을 통해 망식이의 이야기가 계속 확장되면서 머그컵·문구류·에너지바 등 망식이 캐릭터 상품도 쏟아졌다.

현재 망고식스는 망식이 인형 판매만으로도 한 달에 약 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마케팅사업부 김정은 팀장은 “올 7월 17일엔 망식이 돌잔치까지 열었다”며 “맥도날드의 로널드 캐릭터를 뛰어넘는 세계인의 친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상품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 방식도 있다. 인기 애니메이션 ‘변신 자동차 또봇’에 나오는 자동차 X·Y·Z·W는 기아차 소울·포르테쿱·레이·스포티지를 모델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다는 장점이 있다.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모으면서 또봇 완구도 올 상반기 이 분야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협력모델이 됐다. 현대차도 EBS 인기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와 손을 잡았다. 교통안전 캠페인 영상을 제작하고 로보카 폴리 키즈카페를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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