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행「맞춤법」에 이의 있다(1)|남광우<문박·중앙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524돌 「한글날」을 맞아>
현행 한글 맞춤법은 일제 때인 1934년 조선어학회의 안을 채택한 것이다. 이 맞춤법은 거의 40년이 지난 오늘 실제 실용에 적지 않은 혼란과 모순이 드러남에 따라 문교부는 국어연구소를 설치했고 학계에서도 또한 이의개정논의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그래서 이 한글날특집 시리즈는 몇몇 학계의 대표적 이견을 소개함으로써 개정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데 있다.
현행맞춤법이 어렵다는 것은 초·중·고에서 매주 5, 6시간씩 국어교육을 받고 대학입학예시를 거쳐 대학 1년 생이 된 60명에게 받아 쓰인 다음과 같은 결과로 뒷받침된다.
『때맞추어 마추어 입은 양복』=전문정답 13명(22%) 『솥에 안친 밥쌀, 가슴에 얹힌 밥알』=전문 정답 4명(7%)
이것이 바로 현행 맞춤법이 내건 표음문자의 표의화에서 얻어진 통계숫자다.
「실컷」을 발음대로 쓰면 그만인 것을 오도된 표의화 표기법에서 무려 41종의 답이 나왔다는 어느 중학교사의 보고가 있다. 중1 3백50명 중 2백18명, 정답(62%), 중3 2백 명 중 1백14명 정답(57%)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은 어떤가? 60명 중 34명(57%)으로 중3과는 같고 중1만은 못한 성적이다.
『체에 받인 막걸리』에서 정답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고『용ㅎ게 알아맞힌 퀴즈문제』에서 「용ㅎ게」정답은 12명(20%) 이니 이것도 어간과 어미를 구별해 적는다를 원칙고수의 부산물이라 할 것이요, 『늘그막 고생』의 정답 1명(2%)이라는 처참한 수자는 어원을 밝히는 방향의 현행 맞춤법이 빚어낸 비극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①받침을 줄이자.>
현행28개 받침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ㄿ ㄾ ㅀ   ㅄ ㅆ 중 고 문헌에선 ㅋ ㅎ ㄲ ㄵ ㄶ ㄾ ㄿ ㅀ   ㅆ 은 전연 쓰인 일이 없는 것이다. ㅆ 받침글자가 90개나되는데 이 받침으로 「있아오니, 있오」와 같은 오기 예만 낳는다. 「잇사오니, 잇소」로 적으면 어떻다는 것인가? 문교부 문자빈도 조사에 의하면 10만 단어 거의20만 자 중  받침=0, ㅋ받침=0, ㄽ받침=0, ㄾ받침=1, ㄿ받침=2, ㄳ받침=4와 같은 숫자가 실용빈도다. 과연 이런 빈도의 글자를 그것도 필요불가결이라면 모르되 그렇지도 않은 것을 현학적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어디에 있었던가? 체언과 토는 구별해 적는 것이 좋다. 체언은 사물이나 그 밖의 표상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개념자체로서 훌륭하게 독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언은 사물의 동작이나 성상·존재 등 부동성의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반드시 기능요소가 첨가되어야 비로소 구체적 의미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므로 전자와 같이 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각하다·난잡하다」와 같은 동·형용사는「지각·난잡」과 같은 명사에 대한 의식이 분명할 뿐 아니라 「하다」가 붙는 동·형용사가 지극히 많으므로 구별 표기는 해야할 것이다. 「나직하다(낮다) 늘그막(늙다)과 같은 표음 표부로 좋다면 「나즈니·나즌」「늘그니·늘거서」를 못마땅해 할 것도 없고 굳이「부딪히다·부딪치다} 나 「꿇고, 뚫리다」를 고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체언과 토만을 구별해 적는 표기를 주장하는 나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ㄺ ㄻ ㄼ ㅈ ㅊ ㅌ ㅍ의 15받침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명사의 받침으로 쓰이고있는 「ㄲ(밖), ㄳ(몫), ㄽ(돐),  (마 ), ㅄ(값)」등의 쌍받침이나 겹받침에서 뒷받침은 명사 첨용 시의 개입 음으로 처리하면 된다. 「박기·목시·돌시·남기·감시」와 같이 적자는 것이다.
현행맞춤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방언을 적자면 「남기(나무가) 말레(마루에) 반튼(반은)」은 어떻게 적을 것이며「맥시(맥이), 겁시(겁이), 신색시(신색이), 밥시(밥이), 그런즉슨(그런즉은)」은 어떻게 적을 것인가? 「부엌」의 「ㅋ」받침을 고집하면 뷕·부석·벅과 같은 방언표기나 약어표기도 모두 「ㅋ」 받침을 해야 할 것이며 「볶다·닦다」의 된소리화로 또 글자가 늘어나야 할 형편이다.
영자는26, 일본의 가나는 48자에 탁음·반 탁음자가 있을 정도로 고정되어있는데 우리글자는 초성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ㄸ ㅃ ㅆ ㅉ 19, 중성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ㅓ ㅖ ㅚ ㅟ ㅓ ㅘ ㅝ ㅙ ㅞ 21, 받침대표음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과 소리낼 수 있는 글자가 19×21×7로 2천7백93이요, ㅅ ㄺ ㄻ ㄼ ㅈ ㅊ ㅌ ㅍ 받침자만 더 써도 이 글자는 늘어나는데 현행맞춤법의 표의화 정신에 입각하면 3천자 돌파의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부정·부정·부정·부정·부정·부정·부정·부정」이나「상사·상사·상사·상사·상사·상사·상사·상사. 상사·상사」를 모두「부정·상사」로만 적어놓고 전후문맥으로 뜻 알기에 불편이 없다고 하는 판국에 「몫」으로써야 「목」과 구별이 된다는 것이나 「우습다」는 무방하고「우스니」는 안된다는 논리도 우습다. 꼭 용언의 어간과 어미를 구별해 적는 것이 독서 능률상 좋다 한다면 그것도 15개 받침 범위 안에서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②어원 밝히는 것을 재고하자.>
▲「넘어지다·늘어지다·떨어지다·돌아가다·일어나다」는 「너머지다·느러지다·떨어지다·도라가다·이러나다」로 ▲「얼음·걸음걸이·해돋이·땀받이」「같이·굳이」들은 「어름·거름거리·해도지·땀바지」「가치·구지」로 ▲「번쩍이다·번득이다·움직이다·망설이다·지껄이다」를 「변쩌기다·변드기다·움지기다·망서리다·지꺼리다」로 적자.

<③너무 원칙에 얽매이지 말자.>
▲「용케·삼가치·강화키로·요구토록」과 감이 적고 학교에서만 강요되는 사이ㅎ을 없애자. ▲「하라버지」로 적고「풋소·며칫날·서뿔리」로적자. ▲모음조화법칙이라는 원칙으로 현실발음을 소외하고 「가까와·아름다와」같은 표기나 「깡총깡총」같은 표기를 강요할 것이 아니다. ▲「밝습니다·좋습니다·적습니다」가 엄연히 서울의 현실발음인데 「밝읍니다·좋읍니다·적읍니다」를 강요하는 것은 넌센스다.

<④띄어쓰기들 다시 생각하자.>
읽기 쉽고 뜻의 혼동을 없애는데 띄어쓰기의 본 취지가 있다. 영어의 흉내를 내서 지나치게 단어중심주의로 띄어쓰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민요나 시조나 가사나 고대소설 등 모두 삼사·사사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 전통적인 구절 법이요, 우리 호흡에 맞는 것이다.
▲불완전명사를 붙여쓰자.『네가 본「바」를 본「대로」말하여라』 ▲양 대명사를 붙여쓰자. 『일「년」열두 「달」』 .▲사전에 실리지 않은 복합어라도 붙여쓰자. 『친절하게 맞아 「준다」』 『자기 「소개」를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