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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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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어에 「스노비즘」(Snobbism)이란 말이 있다. 흔히 속물근성이라고 풀이하지만 사실은 뜻이 조금 다르다.
자기 신분을 지탱하기에 자신이 없는 상류층의 사람이 사회계층상의 우월성을 내세우려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몰락해도 사람들은 진짜 상류계급을 손쉽게 유별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있어도 상류사교계가 좀처럼 이들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런데 그 사회적 배경이 있다. 「스노비즘」이란 실은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즉 이런 줄도 모르고 제 딴에 상류계급에 한몫 끼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의 언행을 속물근성 이라 비웃었던 것이다.
영국의 「하이·소사이어티」에서는 이른바 「킹즈·잉글리쉬」(『왕의 영어)또는 「로열·잉글리쉬」라고 불리는 언어만이 통한다.
이것을 말할 줄 모르면 아무리 돈이 있고 출세를 해도 한몫 끼지 못하는 것이다. 「로열·잉글리쉬」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게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런던의 「이스트·엔드」주변의 이를테면 문안에 사는 상류계급들의 일상어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겨난 말도, 또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 된 말도 아닌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서 국어를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모든 문학자들의 수세기에 걸친 정성이 얽힌 결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킹즈·잉글리쉬」를 상용하는 사람은 실제론 그리 많지 않다. 런던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코크니」(Cockney)영어다. 그런데도 표준말은 어디까지나 「킹즈·잉글리쉬」이다. 제일 아름답고 바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문교부에서는 대규모의 한글 손질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한다. 이 중에는 2만 단어 이상의 표준말 재사 정도 끼어있는 모양이다.
우리네 표준말은 37년 전의 서울 중류층의 말을 중심으로 제정된 것이다. 그 후 우리의 일상어가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말이란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이다. 또 항상 새로운 것이 자라나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아름다운 말도 있지만 상스러운 말도 많다. 특히 사회가 거칠어질 때에는 말도 거칠어지기 쉽다.
표준말을 정하는 것은 되도록 고운 말을 표준 삼아 쓰게 하려는데 뜻이 있다. 달리 고운 말의 기준을 삼을게 없으니까 표준말을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보다 많이 쓰이고 있는 말로 표준말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말을 곱게 다듬겠다는 것과는 전혀 얘기가 날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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