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사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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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라를 다스리는 어른들은 다 공부를 많이 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만 백성들이야 어디 그러냐. 그러니 일일이 가르쳐 주고 뭐하고 할 겨를이 없으니 따라만 오라고 하면 그만이다-라는 것이 공자의 유명한 말이다.
요즘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듣고 아는 권리가 있는 민주시민으로 행세하려다 보면, 공부자의 말의 진리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하루가 멀다고 자동차라는 이름의 문명의 이기가 엉뚱한 벼랑에서 굴러서 사람목숨을 앗아가지 않으면, 엔진이 어떻고, 브레이크가 어떻게 돼서라면서 떼죽음들이다.
전기 때문에 화재가 나고, 다리미가 과열해서 사람이 불에 타 죽는다. 불량배에게 쫓기다가 극장 2층에서 추락, 다친 처녀가 있다고도 하고, 생활고에 못 이겨서 자살한 관원이 있다고도 했다. 나이팅게일의 후예들이 파업을 했다가 수당을 올려 받고 다시 환자 곁으로 돌아갔다니 다행한 일이지만, 파업을 왜 하게 되었으며 이왕 올려줄 수당이라면 파업하기 전날쯤에 올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일이 다 왜 일어나는지를 나라도 매스컴도 백성에게 소상하게 알려줄 도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치를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입장에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실상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어른되는 선비들만은 그 이치를 알고 있어야 공자의 말이 통한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 고르기만 해도 그렇다. 물론 정치에는 권모와 술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심오한 이치를 일일이 백성에게 알린다는 것은 공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불가이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범상한 시민들이 그런 것을 알아보았자 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오하고 복잡한 내용 얘기는 쑥 빼버리고 이 사람이 우리당 후보로다 하고, 한 사람 이름만 세상에 내놓고 힘있는데까지 사유지하면 얼마나 좋을까.
공자 때와는 달리 오늘의 시민은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차라리 괴로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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