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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IPI회장 호선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여성은 도전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IPI (국제신문협회) 회장직을 맡은 이유입니다.
지난 5월 20일 향항에서 쟤표되었던 재10차 IPI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되었던 호선녀사(39)는 향항의 상업중심가 구룡반도를 굽어보는 그녀의 사무실에서 도전이자 기생할 주축을 이루고있다고 설명했다·
향항에서 가장 큰 신문 그룹인 「신보사」의 전무직과 성도일보 발행인을 보고있는 호선녀사는 지난번 10차 IPI총회를 추선하는 책임을 떠맡았었고 그녀가 마련한 빈틈없는 회CLR 준비애 대해 IPI대표들은 60개단 1천6백여 회원을 갖고있는 IPI의 회장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함으로써 그녀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IPI 재정난 해결에 착수 회장에 당선되던 바로 전날이 호선녀사가 39회 생일이었는데 IPI 대표드은 그녀를『한없이 쾌활하고 좋은 친구(녀석)』라고 불러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실 호선녀사는 「저널리즘」 에 몸을 바친 마음이 공정한 사업가다. 그녀는 항상 새로운 개념, 새로운 기회, 정복해야 할 새로운 도전을 찾고 있다.
IPI회장직이야 말로 나에게는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직을 맡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면서 호선녀사는 새로 일하게 된 IPI직잭에 대해 다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IPI를 지금까지 보다 더욱 건전하고 효과적인 기구로 부활시키고 싶습니다. 이런 일은 벅찬 도전인 것 같습니다.』
회장에 당선되어 며칠되기도 전에 그녀는 IPI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 즉 재정문제 해결에 손을 댔다. 미국에 가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이바지할 이 기구의 미국회원들에게 모금운동에 발벗고 나서도록 했다.「여성이기 때문에 현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호선녀사의 지론이다. 서구 세계이든 또 일반적으로 여성지위가 낮은 「아시아」에서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냐 여자냐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개인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 그도 그럴 것이 호선녀사는 철저하게 남성의 세계에서 자랐다.
중국과 「아시아」 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중국 고약 호유의 제약사업가이자 신문인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라는 것이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방대한 사업체도 경영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인들이 효험이 신비롭다고 믿는 연고약의 일직인 호유를 생산, 거부가 되었고 중국, 향항, 동남 「아시아」에 걸쳐 각 신문사를 소유하고있다.
호선녀사는 62년5월 「버마」 의 「랭군」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향항에 이주하여 프랑스 수녀학교에서 수학했다.
호선녀사의 「저널리즘」에 대한 취미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신문기사를 간추려 읽어드리면서부터 시작 되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방대한 신문왕국에 적극 참여한 것은 20대 초부터 였다.
사업에 적극 발을 디디기 시작한지 2년도 못되어 그녀의 아버지는 68년 미국서 돌아가셨고 그래서 자연히 신문사를 포함한 모든 사업체의 경영을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호선녀사의 아버지가 생전에 해놓은 특출한 사업중의 하나는 모든 해외여행자라면 너무나 익히 잘아는 향항과「싱가포르」에 있는 호유원이다.
호선녀사는 홍콩의 호유권에 있는 저택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비취 (왕석)가 많이 수집되어 있다).
호선녀사가 방대한 사업을 이끌어가는 모토는 「현대화」와 능율이다.
일인과는 함께 일 못한다고 호선여사는 신문제작이나 다른사업을 경영해나가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묵은 전통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을 새로운 과제에 적응시키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에는 언제나 저형이 따른다. 사람들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에 적응 토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호선녀사의 업적은 매우 많다. 그녀는 한자신문을 개선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있다. 한자신문이 기술적인 면과 시실상의 면에서 현대화해야한다고 믿고 있다. 그 중 한가지가 오자신문의 「오프세트」 인쇄. 호선양은 중국어 신문연구소를 창설했고 기타 많은 신문 및 출판기구에 적극 참여하고있다.
그녀는 향항에 가장 크고 가장 현대적인 신문사를 지어 현대적 시설을 갖추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모든 사업을 끄떡없이 이끌어나가는 호선녀사는 『우리는 젊은이들을 해외에서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시설과 기술이 없으니까요』라고 말하며 후진들을 염려하기도 한다.
한때 일본 출판사와. 제휴하다가 손을 뗀 호선녀사는 『일본사람과는 사업을 같이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호선녀사는 새로운 기술, 변화하는 디딤돌을 얻기 위해 독서와 여행을 쉬지 않는다.
중립적 우파 노선따라 호선녀사는 생활의 반종도를 여행에 할당하고있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곳에 가고싶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대부분 사업관계의 여행이 많다. 골프도 물론 좋아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호선녀사는 어떤 특정한 정치관계나 이데올로기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고 있다. 호선녀사가 경영하는 모든 신문들은 중립적 우파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여사 자신의 정치관도 마찬가지다.『나는 정치 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체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며 그 체제가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하고 있다.『향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처럼 정치를 의식 않고 지낸다』고 말하면서 중공의 문턱에 있는 홍콩이면서 이렇다할 정당이나 다른 정치활동이 없는 분위기를 지적했다.【UPI 찰즈 스미드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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