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건널 수 없는 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9호 30면

10년 전쯤 블로그에서 알게 된 문이란 분이 있는데, 나는 마음으로 그를 따르고 좋아해서 육신으로 여러 번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정을 나누곤 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또 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 호감을 느낀 사람도 실제 만나보면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고, 무엇보다 간단히 접속만 하면 만날 수 있는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간과 번거로운 수고가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수줍음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당한 용기까지 필요로 하는 모험이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 경우에는 이벤트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벤트를 걸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토요일 하루 종일 서울국제도서전에 있을 것인데 자신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푸짐한 선물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선물은 당연히 책일 테고, 푸짐하다니 한두 권이 아닐 터.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유권자들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정치인처럼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 번도 블로그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지 않아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르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은 알아볼 것 같았다.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아 나는 그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확인하는 일만 남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역시 온라인의 인연은 온라인으로 그치는 게 좋지 않을까. 포기하고 돌아서서 가려는 내게 달빛 같은 행운이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 거울님 아니세요?”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한번은 도서전에서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밥을 사면, 다음엔 그가 답례로 술을 샀다. 답례를 핑계 삼아 우리는 자주 어울렸고 서로 사무쳤다. 그는 달처럼 밝고 맑은 눈과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와 만난 날에는 늘 달이 떴다. 그는 윤대녕과 폴 오스터와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했는데 우연인지 그들은 모두 제목에 달이 들어가는 소설을 썼다. 『달의 지평선』, 『달의 궁전』, 『달에 울다』. 그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달이 뒤를 쫓는 것처럼 늘 환하고 아득했다.

그렇게 자주 어울려 사무쳤는데 근래 들어서는 한 해가 지나고 다시 해가 바뀌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록 그저 문자나 통화로만 서로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나눌 뿐 정작 만나지는 못했다. 약속을 정했다가도 꼭 무슨 일이 생겨 날짜가 미뤄지고 그러다가 결국 만나지 못한다. 그래도 항상 보고 싶고 그립기는 해서 그도 나도 달이 뜬 밤이나 술에 취한 밤이면 문득 전화를 걸어 그리움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하루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정말 보고 싶고 그리우면 만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와 나는 보고 싶다, 그립다 말만 하고는 왜 정작 만나지는 않는 것일까? 사실은 보고 싶지도 않고 그립지도 않은데 그런 시늉만 하는 것일까?

마치 바둑 복기하듯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항상 우리 약속이 틀어지던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알 것 같았다. 결국 만남 장소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장이 있는 홍대 쪽을 희망했고 나는 회사가 있는 강남을 고집했던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워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좀처럼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그리움도 강을 건너지는 못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