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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교훈 주는 서산대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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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목요법회(대표 홍재상)가 10일 하오 6시 서울 대성빌딩에서 첫 모임을 갖고 새시대의 불교운동의 첫 발을 내디뎠다.
불교의 생활화·현대화가 크게 논의되고 있지만 이것을 구체화하고 또 실천하는 방법론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중생을 모두 건지리라』(중생무변서원도)하는 대승의 도를 사회에 심음으로써 실천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 이 모임이 이루어 졌다고 주최측은 말하고 있다.
목요 법회의 첫날 시인 이은상씨는「서산대사와 그의 문학」을 말하면서『현대의 불교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불교 중흥에 성공한 서산대사에게서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교가 박해를 받던 이조시대에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불교를 일으키려고 나선 서산대사는 33살에 승과를 거쳐 선교양종에 지도자로 확고히 섰다.
40세 이후에 묘향산에 자리 잡고 임진왜란에 당해서 국가와 민족이 고난에 빠졌을 때, 그는 수도자의 몸으로 승군을 모아 호국의 전열에 앞장섰다.
그가 칼을 든 것은『무고한 인민을 살해하는 악마를 처단하고 나라를 구한다』는 정신에서였다고 이은상씨는 말했다.
그의 조국 관념이라든가 인간애는 투철했으며 수도자로서의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문학에 정진하였음도 특별했다는 것이다.
그는 38살 때『삼몽사』를 지어 도와 시의 합치점을 원숙한 경지에서 그렸다.
『주인은 꿈을 손에게 말하고, 손은 꿈을 주인에게 말했네. 이제 꿈을 말하는 두 손, 역시 꿈 가운데 사람이니라』(주인몽설객 객몽설 주인 금설이몽객 역시몽중인)는 귀 절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9살에 어머니를,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자라, 불교가 박해받는 어려운 시대에 산 휴정은 그러한 시대에 불교를 일으키고 나라를 구했다. 정조도 도승이며 의승이었으며, 시승이었던 그의 인물을 높이 보고 그의 화상에 시를 붙였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의 현실에서 쇠퇴와 불신의 길을 가는 불교는 서산의 정신에 비춰 반성하여야 할 것』이라고 노산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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