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휴전선 전역방위 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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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한 미군은 내년 중반이후부터 판문점일대의 전방만을 방위하게 될 것이라고 동경에 주재하는 미국 관변 소식통들이 8일 말했다고 한다. 이는 전장 2백㎞에 달하는 휴전선 가운데 현재 미군이 맡고 있는 약 28·8㎞에 걸친 방위선의 변동가능성을 비친 것으로 우리로서는 중대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보도이다.
물론, 이 보도는 그 기사의 출처마저 분명히 하지 않고, 단지『동경의 미국 관변 소식통 담』이라고만 되어 있어, 현재로서는 한-미 정부의 어느 측에 의해서도 공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특히 9일 국방부고위당국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미국 측과 논의한 바가 전혀 없다고 못박고 있는가하면, 또『주한미군의 감축과, 휴전선방위는 별개의 것이며, 현재 미군이 휴전선을 방위하고 있는 것은 유엔군의 일부로서 이를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휴전선전역을 한국군에만 담당토록 하는 일방적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전기한 보도의 출처, 또는 사실여부를 확인하기에 앞서서 그런 것이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우선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이러한 형태의 보도는 단순한 풍문에 그치지 않고, 어느새 기성 사실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며,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전기한 보도를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우기 우리가 중대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동안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 설이라는 것이 파다하게 전해졌지만, 적어도 구체적으로 휴전선 방위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운위된 일이 없는 터에 이 문제가 불쑥 튀어 나왔다는 점이다.
만약에 전기한 보도가 현실화한다고 하면, 그것은 병력감축의 규모나 성격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미국이 종래 한국방위를 위해 가지고 있던 전략구상이나 군사적인 협조를 크게 변경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한 미군의 감축문제에 대하여 이 시기에 그것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이며, 더군다나 사전대책 없는 감축은 위험천만한 것임을 누차 지적하여 왔다. 그런 판국에 만약 미국이 이러한 일부 병력의 감축에 그치지 않고, 성급하게 휴전선 방위의 책임마저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 결과 초래될 사태는 정말로 우려할 만한 것이 되지 않는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매듭을 지었다고는 볼 수 없는 병력감축 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는 한-미간에 긴밀한 협의와 더불어 충분한 사전보장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요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미국으로서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한국이 직면한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할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물론, 정세상의 변천을 감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의 긴장 상태라는 것은 과거에 비해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눈 가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북괴의 전쟁준비상황에 관한 정보가 그들의 노골적인 도발가능성을 역력히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 거듭 당분간만이라도 현상유지를 강력히 바라는 것은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사전에 억지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다른 것은 모르되 한국에서의 군사력의 균형을 깨치는 조치만큼은 절대로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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