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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NYT특파원「로버트·트럼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드니 NYT동화】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있었던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 광경은 패전한 일본의 굴욕을 창조하기 위한 것인 듯 했다.
1945년 9월2일「시게미쓰·마모루」외무대신이 인솔한 일본 대표단이 회색 빛의 미주리 호에 올라타자 연합국에 대한일본의 무조건 항목을 정식으로 발효시키기 위한 조인식이 침통한 침묵 속에서 시작됐다.
짙은 녹색의 여름 군복을 입은 일본장교들과「시게미쓰」외상 및 그의 보좌관들이 갑판 위의 지정된 장소로 걸어갈 때 이것을 지켜보던 군중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꼿꼿한 자세로 걸어가는 일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족에 목발을 대고 있었던「시게미쓰」는 약간 절룩거리면서 걸어갔다. 그는 연전에 상해에서 한국의 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다리를 다쳤던 것이다.
이 식전을 지켜보기 위해 세계 각 곳에서 모여든 유명한 군인들 가운데는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에 잡혔던 영군 사령관「아더·E·퍼시벌」장군과 필리핀에서 포로가 되었던 미국의 「조너던·웨인라이트」장군이 끼여 있었다.
이들은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했던 일본인을 규탄할 수 있는 산 증인 들이었다.
갑판을 메운 장병들 얼굴에는 승리와 복수의 빛이 엇갈렸다.
이미 일본 점령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지명된「더글러스·맥아더」장군은 펜을 바꾸어 가면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는 맨 처음 사용한 펜을 옛친구「웨인라이트」장군에게 건네주었다. 일본에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을 안겨준 이 식전에서 일인들은 단 한번 조그마한 승리를 거두었다.「시게미쓰」외상 보좌관이었던「가세·도시」까지 는 캐나다 대표가 나라이름 위에 서명해야 될 것을 나라이름 밑에다 잘못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잠깐 언쟁이 오가다 결국은 문서들 다시 보게됨으로써 일본측이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맥아더」장군이 전쟁 종막을 정식으로 선언하는 순간 태양은 그날 동이 튼 이후 처음으로 구름을 뚫고 나타나 미주리 호를 찬란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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