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위조사건이 몰고 온 고액권 발행 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종합해본 각계 찬·반 의견>
심심찮게 얘기돼오던 고액신권발행이 최근의 보수대량위조사건을 계기로 다시 거론되고 있어 찬반, 장기 의론이 분분하다. 흥미 있는 것은 이 같은 백가쟁명 속에서도 정작 발 권 당사자인 한은 이나 주무관청인 재무부사람들만은 하나같이 고액권 얘기만 나오면 정색을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데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고액권 하면 으레 심리적 요인에 의한 인플레자극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고 또 실제로 전임장관 때일시 거론됐다가 고위층으로부터 경을 친 적도 있어서 이들의 신중론에 이해가 가기도 한다.
지난번 내한했던「프리드먼」교수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일반적으로 후진국에서는 고액권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경제구조의 취약성, 물가의 불안정 등으로 경제운용에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때문으로 이해된다.
이론적으로도 한나라의 경제규모에 적합한 화폐 권 종이나 고액권의 상한 같은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이는 각국 경제의 거래관습에 크게 의존하는 때문이다. 단지 프리드먼 교수가 지난번 내한했을 때 우리 나라의 최고액 권(5백원)이 경제규모에 비추어 약간 작다고 지적하고 외국의 예를 들어 평균 주간임금수준까지는 되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사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3천 원 권(69년 제조업임금기준)에서 7천 원 권(69년 도시가계지출기준)까지로 되지만 이것도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문제는 고액권의 발행이 우리의 경제규모나 거래관습에 비추어 불가피한가의 여부와 고액권발행에 따른 장단점에 있다.
고액권의 필요성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승윤 교수(서강대)는 ⓛ『5백원 권이 처음 나온 62년 이후의 소득·물가의 상승을 지적하고 거래편의를 위해서 고액권이 필요하며 ②고액권발행의 심리적 영향에 대해 이는 권종 자체보다 화폐 량 때문이므로 적게 발행하고 1만원, 10만원 권 등 권종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1천원 권은 오히려 소비성향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배수곤씨(한은 부총재)도『기본적으로는 고액권발행에 찬성하나 심리적 요인을 고려, 신중히 처리해야 된다』는 견해다. 그는 ⓛ고액수표의 유통이 많은 것은 그만큼 거래단위가 높아진 때문이며 ②수표를 정밀 인쇄한다는 것은 본원적 거래수단으로서의 화폐기능과 보족 적 수단의 수표기능을 전도시키는 셈이고 ③회수기간(지폐 2년, 수표 3일)에 비추어 수표 정밀인쇄는 사회적 낭비를 가져오며 ④고액권발행에 따른 일시적인 금융기관 유동성감소(별단예금감소)는 발 권 비 절약으로 충분히 보전된다고 말한다.
문상철씨(조흥 은행 장)의 의견도 비슷하다. 즉 ①고액수표유통은 고액화폐가 없는 때문이며 ②수표위조는 수표사용 관행 미 숙 때문이므로 정밀인쇄 한다고 위조가 근절되지 않으며 ③고액권이 없는데 따른 불편(정사·휴대)으로 금융기관부담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재설씨(재무차관)도 기본적으로 고액권발행을 찬성하면서 ⓛ발 권 비 증가와 함께 조폐시설능력이 화폐발행증가규모를 따르지 못하고 있고 ②최고 5백원 권은 외국의 예에 비추어 너무 적은데다 그 동안의 경제성장에 따른 거래규모의 확대에 비추어 비합리적이며 ③고액화폐의 심리적 영향을 우려하는 측도 있으나 1천 원 권·2천 원 권 등의 중간단위만 발행하지 않으면 그 영향은 별반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전체통화량에서 차지하는 화폐 량의 비율이 어느 정도 증가할 것이므로 저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봉환씨(재무부 이재국장)는 고액화폐발행이 벌써부터 검토돼왔고 현재 위조 수표의 발생을 계기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고액화폐가 부작용의 우려도 지니는 만큼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즉 ①고액화폐발행 논의가 경제여건의 변화에서 발단된 것이기보다는 위조수표를 방지하는 대책으로 시작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②화폐기능과 수표기능이 다른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하며 ③심리적 영향, 은행유동성의 악화가능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