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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에 시달려 아내는 병으로 죽고…고아들의"아버지"…어느 학사순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린 고아 3명을 남몰래 키워온 학사순경이 아내마저 산후 후유 중으로 숨지게 되자 양육에 힘겨워하는 것을 동료 경찰관들이 26일 전해 듣고 안타까와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 경찰서 고척 파출소 근무 박기동 순경(35)은 6년 전부터 비정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이를 데려다 친아들처럼 키우던 중 지난 4월1일 부인 김숙자씨(29)가 산후 후유증으로 숨지자 철모르는 고아 3명을 부여안고 어쩔 줄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박 순경은 신문배달로 고학을 하면서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 불량 청소년들을 선도 할 것을 다짐하여 지난 64년 봄 경찰에 투신했다.
첫 근무지인 부산에서 박 순경은 고아를 돌보는 사화사업이 꿈인 김숙자씨와 결혼, 클라슨 고아원에서 유난히 여윈 4세 짜리 고아를 메려다 양자로 삼았다.
박 순경의 성을 따다 이름을 박승호 라하고 어린이 날인 5윌5일로 생일을 정해 친아들 같이 길렀다.
2년 후인 66년 봄, 박 순경은 생후 1개월쯤 된 여아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 집으로 데려다 이름을 정미라 짓고 장녀로 삼았다.
이듬해인 67년, 역시 클라슨 고아원 병실에서 누더기에 싸여 몹시 울고 있는 유아를 보고 가엽게 여기다 못해 집에 업고와 승철이라 불러 매아닌 2남1녀의 아빠가 된 것이다.
박순경 내외는 이들 고아 자녀들이 귀엽게 재롱 부리고 아빠·엄마를 따르기 때문에 비록 어려운 생활 속에서나마 보람을 느껴왔다고-. 그러다가 박 순경은 부인이 막상 자기아기를 낳다가 숨지고 아기만 남게되자 한때 깊은 실의에 빠졌지만 자기 아들을 포함,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된 경찰관의 일과를 끝내고 서울명동의 모 교육원에 나가 영문 번역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밤늦게 서울 영등포구 고척동 산40의 판잣집에 돌아오면 박 순경은 울음에 지친 갓난아기에게 우유를 먹여야하고 저녁을 지어야하는 것이다. 경찰관·번역사· 아버지·어머니의 1인 4역을 맡아야하는 박 순경의 피로한 모습에 동료 경찰관들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다만 안타 까와 할뿐이다. <정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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