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박 대통령의 새 구상을 중심으로|내적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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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동토론>
황산덕 교수 <법학 성균관대>
김영준 교수 <정치학 국방대학원>
김하룡 교수 <정치학 고대>
박봉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손제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차례>
(1)어프로치
(2)외적 요건
(3)북의 상황
(4)내적 문제
(5)전개
박 대통령의 「8·15선언」이 제시한 통일접근 구상에 대한 국내·외의 즉각적인 반향은 일단 호의적이다. 특히 국제사회에서는 그것이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라고 해서 무척 좋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원칙적인 환영의 반응을 보인 국내 여론 중에 일부 보수론자의 신중 경계론이나 일부 급진론자의 감상적 통일론이 없지 않다. 또 통일의 길목에는 해결하고 개선해야 할 국내의 문젯점도 적지 않다. 이런 것이 「통일접근 구상」의 전개와 발전에 앞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사실「8·15선언」은 동·서 긴장완화 방향으로 가고있는 국제조류에 순응하고 「대결에서 협상으로」 변모하는 미국의 대 극동정책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점진적인 남북간의 교류로 표현 될 통일정책의 현실화는 이론적으로도 분단국가를 통일로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이 체제간 교류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박 대통령의 선언이 국제여론에도 좋게 투영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선언은 대외선전과 외교면에서 북괴를 수세로 몰아넣는 전기를 마련한 이정표적 의미가 있다.
「8·15선언」에 대해서는 학계·언론계는 물론이고 야당까지도 원칙적인 환영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환영의 이면에는 정쟁으로 이 문제를 이용할 우려와 국론분쟁의 위험이 복재하고 있다. 보수론자들은 통일에의 길을 닦는 이 구상이 결국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여 두 개의 한국을 국제사회에 고착할 우려가 있다는 점과 이 구상이 발전하여 남·북이 교류나 접촉을 하게되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점에서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선의의 경쟁』을 주창한 것이나 『「유엔」에서의 대좌도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곧 북괴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며 단지 통일을 위한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실인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도 훨씬 발전적인 접촉을 갖고있는 동·서독간에도 서독이 동독을 국제법상으로는 인정치 않는다는 예는 우리현실에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또 공산주의 이론으로 무장된 북괴와 자유스런 생활에 젖은 우리가 교류를 가지면 불리할 것이란 논리는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개방사회가 폐쇄사회보다 외부영향에 강하다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반대라고 볼 수는 없을까. 두 체제가 접촉할 때 상호간에 영향이 있기 마련이지만 폐쇄사회인 북괴에 보다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북괴의 체제가 변질되고 자유화의 물결이 북녘에 일 때, 우리의 통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숙하는 것일진대 이러한 패배주의적 사고는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터부」시 됐던 통일논의가 활발해질 것을 계기로 책임감 없는 감상적 통일론도 경계해야한다. 정부측에서도 감상론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통일이 의지나 감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체적 역량을 기르고, 국제적 여건이 좋아지며, 북괴의 자세가 호전적인 무력통일의 자세에서 진정한 평화추구로 바뀔 때 가능한 것인 만큼 책임감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북괴는 우리의 국론분열을 위해 박 대통령이 제시한 선행조건의 충족없이 상투적인 역공세를 펴 올 가능성도 있어 더욱이 그렇다.
4·19후 불었던 통일논의가 과열됐기 때문에 통일논의가 더욱 「터부」시 됐던 것을 명심하여 감상적인 통일론이 우리의 통일에 대한 자세를 또다시 10년 후퇴시키는 일이 없어야한다.
「8·15선언」에서 표명된 통일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켜야한다는 것이 국민의 흥망일진대 정부는 여당 대변인이 말했듯이 선행조건 충족에 따라 점진적으로 반공법이나 보안법 등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반공법과 보안법의 「레손·데트르」(존재이유)는 북괴의 간접침략을 막는데 있으니 간접침략이 줄게되면 이 법은 마땅히 고쳐 건설적인 통일 논의가 꽃 피우도록 해야한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는 통일 논의의 한계를 설정, 이 한계안에서의 통일 논의의 자유, 특히 통일에 대한 학술연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통일에의 길을 찾기 위한 의견의 교환은 있어야 할 것이나 민족의 소망인 통일문제가 정쟁의 「이슈」가 되어 통일에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선언에서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체제간 경쟁을 제창했는데 이는 우리국력의 성장에서 온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본다.
민주주의의 장점이고 또 강점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 생활향상의 경쟁」에는 경제적인 면 뿐아니라 이런 면까지도 포함된 것으로 생각한다. 후진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발전에 치중하다보면 기존 질서의 분화, 혼란과 부정부패, 부의 편재가 뒤따라 정치후퇴를 가져온다는 「헌팅턴」교수의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체제가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조리를 극복하고 민주역량 강화를 통한 정치발전을 경제건설과 병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신장함과 더불어 경제발전으로 모아진 부의 편중을 지양하고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남북통일이 국민의 비원이라면 정치와 경제의 발전과 조화에서 이룩된 국민적 합의 위에서 점진적 통일접근을 한시라도 지체없이 추구해야 할 것이다.

<대표집필=손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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